
그럼에도 두 사람의 언행은 오버랩되는 면이 꽤 많다. 모두 극도로 자기중심적이다. 최 원장의 설명을 빌리자면 '대세주도형'이다. 상대를 통제하고,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다.
영화 '어프렌티스'에는 야심만만했지만 애송이에 불과했던 젊은 트럼프가 거물급 악질 변호사 로이 콘을 만나 승리의 법칙 세 가지를 전수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두 부인하라' '패배했다 해도, 승리를 주장하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실제로 로이 콘이 이 말을 직접 한 적은 없다고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트럼프 삶의 궤적은 이 법칙을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준다. 상대(중국, 민주당, 소수자 등)를 적으로 상정한 뒤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적을 향한 자기 지지층의 적개심을 부추긴다. 비판적인 언론보도는 "가짜뉴스"라며 일축해버린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는 불법선거라며 대놓고 불복을 선언했고 지지자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켰다. 호기롭게 시작한 관세 전쟁에선 오락가락 허둥대는 와중에도 "승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윤 전 대통령도 로이 콘에게 조언을 들은 게 아닌가 싶다. 야당은 종북·친중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여당 내 반대 세력에는 배신자·내부 총질의 프레임을 씌우거나 내쫓아버린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부정선거의 온상, 비판 언론은 가짜뉴스 제조 공장으로 공격한다. 이런 닥공(닥치고 공격)의 회심타는 모두가 알다시피 12·3 비상계엄 선포였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끝 모를 의혹들은 모두 근거 없는 것이거나 '박절하지 못해' 생긴 일, 정치공작에 말려든 것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다. 파면된 뒤 사저로 돌아와서는 "다 이기고 돌아왔다"며 정신 승리에 취한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이 던진 거대한 승부수 역시 다른 듯 닮았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 기술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성공을 가져다줬다. 협박의 강도를 최대치로 올려 공포심을 자극하고, 저항하는 상대에겐 반발 정도 빼주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관세 전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과거 성공 공식대로 맞아떨어지진 않고 있다. 미국 내에선 전방위적인 반발에 직면하고 동맹국들과는 척을 질 판이다. 무엇보다 메인 타깃인 중국 고립 전략도 신통치 않다. 중국은 '받고 50% 더' 식으로 고율 관세에 고율 관세로 맞받아치고 있고,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포섭하며 외교적 영향력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로봇 등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산업 자생력을 키우는 기회로도 삼는 모습이다. 그러니 미국도 계속 오락가락한다.
12·3 계엄은 (의도는 있었을지언정) 트럼프식의 치밀한 계산조차 없었다. 그러니 실익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헌법 가치 훼손이나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보수 진영을 초토화하고 국론은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분열됐다. 본인은 파면됐으며 그토록 제거하고 싶어했던 정적의 앞길에 주단을 깔아줬다.
궁금해진다. 두 사람의 정치 말년은 비슷할까, 다를까.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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