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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트럼프 관세가 제조업을 불러올 수 있을까?

  • 정양범
  • 기사입력:2025.04.29 09:53:21
  • 최종수정:2025.04.29 09: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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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엄마 찾아 삼만리의 험난한 길을 나섰다. 마르코 엄마는 아픈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당시 세계 5대 부국인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가정부 일을 했다. 소년은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지만, 엄마는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난 후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곡물, 육류 그리고 광물 등을 수출하며 잘사는 나라로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 할 정도였고, 남미 최초로 1900년대 초에 지하철을 완성한 탱고의 도시였다.

그랬던 경제부국이 1970년대 이후 몰락하기 시작하여, 지난 40년간 국가부도 (디폴트)를 아홉 차례나 겪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그 몰락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꼽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와 제조업의 허약함이다. 제조업이 허약한 나라는 일시적으로는 부국이 될 수 있지만, 지속적 경제강국은 되지 못한다는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거기에다 정부는 미약한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였으니,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었다. 앙숙인 이웃 브라질은 1920년대부터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여 자동차, 항공, 철강 등 제조업이 발전했고, 지금은 브릭스(BRICS)의 첫 글자 나라로 발 돋음 하였다. 그나마 마라도나와 메시 그리고 며칠 전 선종한 프란시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구겨진 자존심을 살려주었다.

인간의 삶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제조업은 국가의 기반이며 국력의 기초이다. 즉, 지속가능한 경제력과 국방력의 토대이다. 제조업의 정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통계법에 “물질 또는 구성요소에 물리, 화학적 작용을 가하여 성질이 다른 제품으로 전환시키는 산업활동”이라고 한다. 그렇게 제조된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니게 되어 상업 등 서비스산업의 기반으로서 경제력을 증대 시킨다. 아울러 국제 교역에서는 수출능력을 가지게 되니, 세계 무역의 80%는 제조업이 차지한다.

역사상, 제조업으로 세계를 제패한 패권국의 시작은 영국이다.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까지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던 나라였다. 제조업 강국이니 거기에서 경제학도 태동하였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 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를 관찰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하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국가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미국이 제조업 대국이 될 것을 진단한 것이다. 그 진단대로 미국은 1890년대에 세계 제일의 공업국으로 부상하였고, 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초강대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중심의 경제는 금융, 보험 등 서비스업의 발전도 부수적으로 불러일으켰다.

제조업은 대학 졸업장 없는 미국 남자들이 맞벌이 안 하고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20세기까지 미국이 전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였으나, 21세기 들어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지금은 17.5%까지 떨어졌고, 그 하락을 중국이 차지하면서 상승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세계 제1의 제조업 국가 자리를 내주고 2위이다.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약 29%를 차지하며 전성기의 미국과 비슷한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제조업은 여전히(2023년 기준) 전체 고용인구의 9.7%인 1,560만명을 포용하고 있어, 금융, 보험, 부동산, 공무원 등 어느 섹터보다도 큰 고용분야이다. 수출의 60%를 그리고 GDP의 11%를 제조업이 책임지고 있다. 한편, 미국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일자리의 비중은 점차 감소한다. 그런 현상은 1980년대에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긴 일본 상품이 수입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UAW(전미 자동차노조)나 TEAMSTERS(전미 트럭운전자노조) 등 강성 노조도 거기에 한몫 했다.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감소했지만, 긍정적인 면은 산업에 자동화의 확대로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면은 과도한 임금 및 복지비용 때문에 경쟁력이 약해진 제조업체들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이른바 ‘오프 쇼어링(Off-shoring)’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침내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야기된 금융위기와 2009년 GM 파산보호신청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 결과 제조업의 쇠퇴가 금융위기까지 야기함을 알아냈고,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서비스 등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라고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에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PCAST(과학기술자문위원회; President’s Council of Advisors on Science & Technology)’를 설치하여 제조업 르네상스(Manufacturing Renaissance)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중국의 패권 도전으로 국가안보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PCAST의 보고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인식 변화를 불러왔다. 즉, 제조업이 곧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이니, 기존 자유방임주의적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의 도전에 대한 견제책으로서, 또 집 나간 미국 기업의 복귀 즉, 리쇼어링(Re-Shoring)을 위해서 경제를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기 보다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유인책을 사용해야 할 때라고 각성한 것이다.

오바마 이후 제조업을 경제와 국가안보의 초석으로 본 경제관이 구현된 것이 2022년 IRA(인플레이션감소법)와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이다. 바이든은 제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에서 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정책에 주안점을 두었다. 재집권한 트럼프도 ‘제조업 르네상스’에 역점을 두는 것은 민주당 정부와 맥을 같이한다. 다만 그의 착각은 높은 관세가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고, 또한 그것 때문에 외국기업들이 스스로 미국에 들어와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40년간 자동차 제조업에 종사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니 조금이라도 제조업 경영에 관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중요한 몇 가지를 그는 간과하고 있다.

첫째, 관세는 물가를 올린다. 미국 생산코스트가 올라서 관세를 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미국에 공장은 안 온다.

둘째,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면 주변에 그와 연관된 소재, 부품, 장비 즉 ‘소부장 산업’과 Supply Chain 이 발달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수입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공장을 지으라 하면서 미국에서 조달할 수 없는 부품이나, 미국보다 가격이 싼 원료나 장비에 대해서도 완성품과 같은 관세를 부과한다. 미국에 이미 진출한 자동차, 전자, 배터리 회사들은 핵심부품, 원료, 금형 그리고 첨단 장비 등을 한국이나 기타 국가에서 수입한다. 없거나 엄청 비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고율 관세를 매긴다면 경영자는 머뭇거릴 것이다. 또 미국은 전력 공급망 등 인프라에도 지금부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전기 공급망이 노후화되어 번개가 치고 바람만 불어도 정전되는 상황에서 고도로 자동화된 로봇이나 장비는 그 생산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셋째, 미국에는 숙련된 기술자가 태부족이다. 모기업에서 기술자가 와서 공장이 안정될 때까지 기술이전 및 교육해야 한다. 그들을 위한 비자는 빠르고 충분하게 발급되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또 노동인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학 등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창의성 있게 일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거기에 미숙련, 비경험자라도 풍부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노동력의 유입을 막고 있다.

넷째, 외국에서 부품이나 원료를 수입하여 미국에서 제조한 후 다시 수출하는 경우 관세환급이라는 기본은 줘야 한다. 그래야 수출이 장려되고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를 계속 밀어 부친다고 해서 당장 자유무역과 세계 경제의 Globalization 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고관세가 지속되면 오히려 여타 국가들은 미국을 왕따 시키고 상호 비교우위에 의한 국제분업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도 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쓸 때 중국은 몰락한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자유무역을 장려하지 않고 비교우위에 의한 국제분업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은 영국과의 무역을 거부하다가 결국, 아편전쟁으로 한 방 맞고 오랫동안 경제 후진국으로 남아 있었다.

미국은 아르헨티나나 중국과는 다르다. 아직도 미국은 제조업 중심 국가이고, 그곳에는 트럼프의 독단을 제어할 인재와 사회적 시스템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미국은 관세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계속 위대한 나라로 남을 수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했으니 그렇게 다시 돌아갈 것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삼기 북미법인장/ 前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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