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야당이 모수개혁(Parametric Reform)을 우선 추진하자고 주장하면서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국민연금 개혁 왜?
2056년 기금 고갈 우려
현재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로 전환되며 2056년이면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 예상됐던 기금 소진 시점보다 앞당겨진 수준이다. 조속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0%,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3세(2028년부터 만 65세로 상향 예정)이다.
1998년 이후 한 차례도 조정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험료율이 18~20%인 것에 비해 한국의 보험료율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개혁 이후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정치 부담과 사회 갈등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제는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 국민연금 가입자는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는 2181만2216명으로 2023년 말 기준 2238만4787명 대비 57만3000여명이나 줄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연금개혁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후세대에 전가되는 부채가 885억원에 달한다”며, 신속한 논의와 처리를 촉구했다.
![사진설명](https://wimg.mk.co.kr/news/cms/202502/14/news-p.v1.20250214.ad07b47ae8494042a8435ebd5920c3e7_P1.jpg)
개혁 방향은 어떻게?
대안 떠오른 모수개혁
국민연금 개혁은 크게 모수개혁과 구조개혁(Structural Reform)으로 나뉜다.
모수개혁은 연금 제도의 근본적인 틀은 유지한 채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연령 등 개별 매개변수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즉, 현재 연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국민연금의 내는 돈과 받는 돈 비율을 재조정하자는 말이다. 구조개혁은 연금 시스템 자체를 변경하는 것으로, 다층연금체계 도입, 공적연금 통합, 확정급여(DB) 방식에서 확정기여(DC) 방식으로의 전환 등 근본적인 개혁을 의미한다. 참고로 다층연금체계란 하나의 연금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공적연금(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여러 가지 연금 제도를 조합해 보다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개인별 상황에 맞춘 연금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모델이다.
이번에 정치권에서 선(先) 모수개혁만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는 이유는 구조개혁이 쉽지 않아서다. 근본적인 연금개혁이 구조개혁인 것은 맞다. 다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논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야는 모수개혁을 먼저 시행하고, 구조개혁은 점진적으로 논의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좁혀가는 분위기다.
모수개혁, 여야 합의 가능?
구조개혁 함께 논의 변수
모수개혁은 사실 새로운 논의는 아니다.
지난 21대 국회 때 보험료율을 종전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까지 했다. 소득대체율도 44%로 조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다 막바지에 정부·여당이 “기초·퇴직연금 등과 연계한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연금법 처리가 최종 무산됐다.
이번에 또다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다.
소득대체율이 특히 쟁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45%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최소 42%, 최대 44%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소득대체율 조정은 연금 기금 소진 시점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수급자가 받는 연금액이 증가하지만 기금 고갈을 앞당길 수 있다. 반대로 소득대체율을 낮추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노후 보장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 개혁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닌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논의 주체를 두고도 여야가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야 동수로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국회 연금특위 구성 여부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특위가 구성되면 여야가 협력해 포괄적인 개혁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반면 복지위에서 논의할 경우 상대적으로 신속한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어느 방식이 국민연금 개혁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구조개혁 논의를 병행하자는 주장도 모수개혁법 통과의 걸림돌이다.
국민의힘은 연금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수개혁과 함께 구조개혁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연금체계를 포함한 포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민주당은 구조개혁은 장기적 과제로 두고, 당장 실행 가능한 모수개혁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여야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 조정안으로 막판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구조개혁까지 같이하자는 문제로 다시 무산된 바 있다.
근본적인 대안은
IMF 권고 “2070년 GDP 대비 순부채 50%”
국민연금이 정말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인 대안은 자동안정화 장치 제도 도입이다. 기금 고갈이 눈앞에 오면 납부액을 올리거나 수급액을 줄이는 식이다. 이 제도는 OECD 38개 회원국 중 24개국이 이미 도입했다. 이런 제도가 마련되기 전이라면 결국 고갈 시점을 늦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간한 ‘한국의 연금 모수개혁 옵션’ 보고서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연금(기초·국민·퇴직·직역) 지출이 2009년 1.8%에서 2022년 4%로 증가했는데 연금 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연금 지출 비중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신 수급 개시 연령을 2년(65세 → 67세) 늦추고, 보험료율은 4.6%포인트 인상, 소득대체율은 3.3%포인트 낮추면 GDP 대비 순부채는 2070년에 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궁극적으로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모수개혁이라도 해야 후배 세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여야가 대승적으로 합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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