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영업이익률 46%, 한미반도체 뭘 했길래

곽동신 회장 경영권에도 힘 실린다

  • 김경민
  • 기사입력:2025.02.14 12:53:07
  • 최종수정:2025.02.14 12:53:07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곽동신 회장 경영권에도 힘 실린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AI 반도체 장비 시장이 날개를 달면서 한미반도체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재계의 부러움을 사면서 한미반도체를 이끌어온 곽동신 회장 경영권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미반도체 실적이 날개를 달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한미반도체 인천공장과 곽동신 회장. (한미반도체 제공)
한미반도체 실적이 날개를 달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한미반도체 인천공장과 곽동신 회장. (한미반도체 제공)

한미반도체 지난해 실적 날개

TC 본더 수요 급증…영업이익률 46%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5589억원, 영업이익 2554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년 새 매출은 251%, 영업이익은 무려 638%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이 46%에 이를 정도로 수익성이 월등히 높아졌다. 매출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2005년 코스피 상장 당시만 해도 매출이 790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20여년 만에 8배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여세를 몰아 2026년 매출 목표 2조원을 앞세웠다.

한미반도체 실적이 날개를 단 비결은 뭘까.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 핵심 장비인 열 압착 본딩 장비 ‘TC(Thermal Compression) 본더’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원재료인 웨이퍼에 집적회로를 그려 전기적 특성을 지니도록 가공하는 과정이다. 후공정은 기판 위에 만들어진 회로를 하나씩 자르고 배선을 연결, 패키징한 후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는 단계다.

한동안 칩 미세화를 위한 최첨단 기술이 발전해온 전공정에 비해, 후공정은 기술적 난도가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전공정에서의 반도체 성능 개선이 쉽지 않아지면서 후공정에서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후공정, 특히 패키징 공정에 대형 반도체 기업이 잇따라 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HBM은 고성능 AI 연산에 특화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꼽힌다. 기판 위에 최대 12개 메모리 트랜지스터를 쌓아 올리는 적층 방식으로 제조한다. 칩을 연결하는 패키징 즉 후공정 기술이 핵심이다. HBM을 제작하려면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이 끝난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인 TC 본더가 필요하다. 주로 차세대 HBM 반도체 칩 수직 적층 생산성, 정밀도 향상 패키징에 활용된다.

특히 한미반도체가 생산하는 ‘듀얼 TC 본더’는 HBM 생산에 꼭 필요한 장비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은 뒤 1024개의 구멍(데이터 통로)을 뚫어 연결해 생산한다. 듀얼 TC 본더는 쌓아 올린 D램의 구멍을 뚫는 장비다.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의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미반도체의 TC 본더 수요도 날개를 달았다. 한미반도체는 그동안 SK하이닉스에 주로 TC 본더를 공급해왔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지난해부터는 미국 마이크론에도 TC 본더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AI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미국 엔비디아, 브로드컴에 적용되는 HBM3E 12단 제품의 90% 이상을 한미반도체 장비로 생산해왔다.

덕분에 HBM 생산용 TC 본더 시장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한미반도체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중 가장 주목받는 이유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전 세계 HBM 시장 규모는 올해 380억달러(약 55조원)에서 2026년 580억달러(약 84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장 활황으로 TC 본더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한미반도체가 향후 삼성전자에도 TC 본더를 공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며 “이 경우 한미반도체 매출 상승세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TC 본더와 함께 한미반도체 매출 성장세를 견인하는 핵심 제품인 ‘마이크로 쏘&비전 플레이스먼트’도 주목을 끈다. 반도체 패키지를 작게 절단한 뒤 세척·검사를 한 번에 하는 장비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최근 개발한 ‘7세대 뉴 마이크로 쏘&비전 플레이스먼트’는 총 270건의 특허가 적용돼 생산성과 정밀도를 높였다는 것이 사측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한미반도체 해외 수주가 늘면 글로벌 반도체 업계 ‘슈퍼 을’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처럼 ‘한국의 ASML’로 도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HBM 시장이 AI 데이터센터에서 자율주행차, 전력 그리드 등으로 확장되면서 한미반도체 입지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모바일용 HBM 시장에서도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면 매출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미반도체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곽동신 회장 경영권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곽동신 회장은 곽노권 한미반도체 창업주 장남으로 24세였던 1998년 한미반도체에 입사했다. 한미반도체 기획관리실 차장을 거쳐 2007년 33세 젊은 나이에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14년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말 회장 자리까지 올라섰다. 한미반도체 최대주주인 곽동신 회장은 최근 20억원 규모 자사주를 취득해 지분율을 33.95%에서 33.97%로 끌어올렸다.

곽 회장은 소부장 강소기업답게 무리한 다각화는 피하고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잘하는 장비를 지속적인 연구개발(R&D)로 업그레이드해오는가 하면, 매년 매출의 상당 부분을 R&D 비용으로 썼다. 인천 서구 주안국가산업단지에 총 8만9530㎡(2만7083평) 규모 7개 공장의 반도체 장비 생산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라 생산능력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여세를 몰아 해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지난해 말 미국 법인 설립 계획을 밝혔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 전용 칩 수요 급증에 대비해 현지 고객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곽 회장은 “엔비디아 차세대 제품인 블랙웰도 한미반도체 TC 본더로 생산 중”이라며 “HBM TC 본더 세계 점유율 1위인 한미반도체의 위상과 경쟁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진설명

악재도 적잖아

한화세미텍 등 후발 주자 공세 거세

물론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최근 한화세미텍(옛 한화정밀기계)뿐 아니라 싱가포르 장비 업체인 ASMPT 등 후발 주자들이 HBM용 TC 본더를 SK하이닉스에 납품하려 타진하는 등 한미반도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정밀기계에서 사명을 바꾼 반도체 장비 전문회사 한화세미텍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미래비전총괄을 맡으면서 TC 본더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만약 이들 업체에 납품 물량을 뺏길 경우 한미반도체 실적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AI 업계를 뒤흔든 중국 오픈소스 AI 모델 ‘딥시크’의 등장도 한미반도체에 악재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저비용 고성능’을 앞세운 딥시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당초 예측보다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연히 한미반도체 TC 본더 수요도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여파로 주가도 부진한 양상이다. 한미반도체 주가는 지난해 6월 18만원을 뚫을 정도로 치솟았지만 이후 급락해 최근 10만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2월 12일 종가 9만8600원). 재계 관계자는 “한미반도체 TC 본더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지만 후발 주자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다. 선두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7호 (2025.02.19~2025.02.2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