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장부인 워싱턴 정가에도 비상령이 내렸다. 의회에서 상·하원 의원 6명이 감염을 우려해 2주간 자진 격리에 들어가면서 일각에선 의회 폐쇄 가능성까지 제기되기 시작했다. 백악관도 예외가 아니다. 각계 인사들이 백악관 관계자들과 수시 접촉하고 있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진 격리에 들어간 의원 3명과 최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지난 8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주)과 폴 고사 하원의원(애리조나주)이 자가 격리에 들어간 데 이어 9일에는 더글러스 콜린스 하원의원(조지아주), 맷 개츠 하원의원(플로리다주), 마크 메도스 하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이 스스로 격리를 선언했다. 특히 메도스 의원은 지난 주말 차기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돼 곧 백악관에 출근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들 5명 모두 공화당 의원이다. 이들이 자진 격리에 나서게 된 연결고리는 지난달 26~29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보수행동정치회의(CPAC) 행사였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과 악수하거나 사진을 함께 찍은 것으로 확인되자 격리를 자청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 행사에 참석했지만 확진자와 접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과 최근 밀접 접촉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콜린스 의원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본부를 함께 방문했고, 개츠 의원은 9일 에어포스원에 동승했다.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검사를 받느냐'는 질문에 펜스 부통령은 "나는 검사를 받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 회견장이 술렁였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부통령의 감염 가능성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73세로 미국 CDC가 각별한 주의를 권고하는 고령자에 속한다. 이에 대해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회견 이후 "대통령은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서 "그는 확진자와 오래 밀접 접촉하지 않았고 아무 증상도 없으며 매우 건강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백악관도 외부 인사 출입을 줄이고 내부 방역 작업을 강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주 지역을 순회하며 대규모 유세나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개최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외부 행사 참석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회도 아직은 폐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으나 만약 유권자 접촉이 많은 상·하원 의원 가운데 확진자가 나온다면 긴급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현재 자가 격리에 들어간 의원은 앞서 공화당 5명과 줄리아 브라운리 민주당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 등 6명이다.
의회 역시 70대 이상 고령자가 3분의 1에 달하는 만큼 경계심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하원에서는 영상으로 회의를 하고 표결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이른바 '원격 투표' 법안이 곧 제출될 예정이라고 이날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지역별로 매주 진행되고 있는 정당별 대선후보 경선도 문제다. 당장 10일에는 6개 주에서 경선이 열리는데, 이 중에는 미국 내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부 워싱턴주도 포함돼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경선을 앞두고 지역을 돌며 수많은 유권자와 접촉 중이다. 두 사람 역시 70세를 훌쩍 넘어 감염 우려가 큰 고령자에 해당하지만 사활을 건 승부를 벌이고 있기 때문에 유세 중단을 검토하기 힘든 상황이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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