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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핀셋지원 … K육상 신기록 11개 탄생 비결

과거 성적에 대한 배려 없이
현재 실력만으로 국대 선발
심폐 지구력 필요한 중장거리
고지대에 베이스캠프 차리고
단거리 선수는 미국·일본行
연령대별 체계적인 교육도

  • 임정우
  • 기사입력:2025.07.31 17:13:00
  • 최종수정:2025.07.31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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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대표팀 이준혁·이재성(왼쪽부터)이 바통 터치를 하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대표팀 이준혁·이재성(왼쪽부터)이 바통 터치를 하고 있다. 대한육상연맹
불모지로 평가받던 한국 육상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우상혁을 시작으로 이재웅, 나마디 조엘진, 서민준, 이재성, 유규민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여럿 등장하면서다. 연령별로 세분화하는 선수 맞춤형 프로젝트와 무한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 육상은 이제 어떤 나라에서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갖게 됐다.

한국 육상은 올해 세계 각국에서 승전보를 연달아 전하고 있다. 한국 육상의 위상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선수는 남자 높이뛰기 간판 우상혁이다. 한국 육상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등극했던 우상혁은 올해 출전한 7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중거리에서는 이재웅이 올해만 벌써 두 차례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5월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1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는 7월 16일 호크렌 디스턴스 챌린지 4차 대회에서 결승선을 3분36초01에 통과했다. 이 기록이 주목받은 것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작성된 모하메드 사윈(사우디아라비아)의 대회 신기록(3분36초49)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남자 400m 계주팀은 2025 라인·루르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 육상이 세계종합대회 계주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역시 한국 육상 최초로 따낸 남자 400m 계주 금메달이다.

2025시즌 일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작성된 부별 한국 기록과 한국 신기록은 각각 15개, 11개다. 오랜 기간 깨지지 않았던 한국 신기록들을 갈아치우는 선수가 많아진 핵심 원동력은 대한육상연맹의 핀셋 지원이다. 대한육상연맹은 현재 국가대표 선수들을 담당하는 경기력향상위원회와 꿈나무·청소년 대표·후보 선수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우수선수육성위원회를 두고 있다. 두 기구는 각기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경기력향상위는 현재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선수들이 국제·국내 대회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수선수육성위는 미래 국가대표들을 키워내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연령대별로 필요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의 국가대표와 미래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2021년 3월이다. 한국 육상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대한육상연맹이 기존에 운영하던 신인발굴위원회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현재 우수선수육성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백형훈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는 "올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재웅, 나마디 조엘진 등 대부분의 선수는 국가대표로 발탁되기에 앞서 꿈나무·청소년 대표·후보 선수 단계를 차례로 거쳤다. 나이대별로 필요한 훈련을 받고 기초를 잘 닦은 덕분에 성인이 된 뒤 기량이 만개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각 선수가 요청하는 훈련법을 도입하는 것도 얼마 전부터 이뤄지고 있는 변화 중 하나다. 과거에는 국가대표 개인보다는 팀 전체에 초점을 맞춰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요청에 맞춰 전지훈련지와 기간 등을 정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등에 필요한 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해외 대회 출전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백 전무이사는 "종목마다 선수가 갖춰야 하는 능력이 다른 만큼 선수 맞춤형 해외 전지훈련을 도입했다. 심폐지구력이 중요한 중장거리 선수들은 고지대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순간적인 폭발력이 중요한 단거리 선수들의 경우 다양한 연습 기구를 보유한 미국, 일본 등으로 넘어가 훈련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필요로 했던 맞춤형 훈련을 받은 선수들의 만족도는 상당했다. 이재웅은 "올해 두 차례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는 데 고지대 훈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음달 미국 덴버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하는데 얼마나 더 실력이 향상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올해 가져간 또 하나의 변화도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더욱더 체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트랙&필드와 로드로 나뉘어 있던 경기력향상위를 트랙, 필드, 로드로 세분화했다. 트랙은 100m처럼 경기장 트랙에서 열리는 종목을 의미한다. 필드와 로드 종목에는 각각 도약·투척 등과 마라톤·경보 등이 속해 있다. 한 국가대표팀 지도자는 "올해 여러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이 작성된 이유 중 하나가 국가대표 선수들이 트랙, 필드, 로드 전문 지도자들과 훈련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대표팀 소속 선수들의 실력 향상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한국 신기록이 쏟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 육상 선수들에게 '영원한 국가대표는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 국가대표 선발 제도 변화도 엄청난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육상연맹은 올해 10월 전국체육대회가 끝난 뒤 오로지 실력만 고려하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 실업팀 지도자는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선수들 사이에서는 한 번 국가대표팀에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잘하면 언제든지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선발 제도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임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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