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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 연습할 시간 드리블에 투자” EPL이 반한 ‘코리안 드리블러’ 윤도영···“아파트 주차장에서 저글링 연습했어요” [이근승의 믹스트존]

  • 이근승
  • 기사입력:2025.06.27 06:54:00
  • 최종수정:2025.06.27 0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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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영(18)이 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윤도영은 이제 유럽 도전을 시작한다.

윤도영은 3월 2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이적을 확정했다. 윤도영은 7월부터 2030년 6월까지 브라이턴에 몸담는다.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은 지난해 대전하나시티즌 유니폼을 입고 프로(K리그1)에 데뷔했다.

윤도영은 프로 데뷔 1년 만에 세계 최고 선수가 즐비한 유럽 빅리그 빅클럽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윤도영은 유럽 빅리그 클럽의 관심을 넘어 세계 최고의 리그인 EPL 소속 브라이턴과 장기 계약까지 맺었다.

‘MK스포츠’가 대전 클럽하우스인 덕암축구센터에서 윤도영과 나눴던 이야기다.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Q. 이제 유럽으로 향합니다. 어떤 기분입니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설렘 반 걱정 반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잘 안됩니다. 열심히 부딪혀 봐야죠.

Q.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 대전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잖아요. 이렇게 빨리 유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까.

상상은 했어요(웃음). 프로 데뷔 전부터 최대한 빨리 유럽으로 나아가는 게 목표였습니다. 제 계획이었죠. 유럽 도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발걸음을 내디딘 만큼 이제부터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Q. 일찌감치 유럽 도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거군요.

학창 시절부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했던 것 같아요. 대전에서 감사하게도 일찌감치 기회를 잡았습니다. 유럽으로 나아갈 기회도 따라왔죠. 환경만 달라지는 겁니다. 계속해서 죽자 살자 부딪힐 거예요.

절친한 친구 사이인 양민혁(사진 왼쪽),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절친한 친구 사이인 양민혁(사진 왼쪽),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절친한 친구인 양민혁이 먼저 유럽으로 나갔습니다. 친구의 도전을 보면서 자신감을 더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연령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친구입니다. (양)민혁이나 벨기에에서 활약 중인 (김)명준이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제 스타일이 ‘유럽에서 더 잘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새로운 환경에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Q. 어떤 부분에서 ‘나랑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축구 스타일이요. 민혁이나 명준이에게 얘길 들어보면, 시원시원하더라고요. 유럽은 상대 진영으로 끊임없이 전진합니다. 아주 공격적이죠. 수비도 전방에서부터 공격적으로 해요. 시원시원한 스타일이 제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윤도영의 부모님 마음도 궁금합니다. 작년까지 고교 3학년이었던 아들이 세계 최고 선수가 즐비한 유럽으로 나아가는 거잖아요. 부모님 반응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저한테는 티를 잘 안 내려고 하세요. 그런데 제가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죠. 부모님이 내색은 안 하시는데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원래 걱정이 많은 분들이시거든요. 제가 유럽 무대에 잘 적응해서 부모님의 걱정을 하루빨리 덜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Q.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갑니까.

부모님이 “우리가 같이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누나가 같이 가는 건 어떻겠느냐”라고도 물어보셨죠. 처음엔 저 혼자 적응해 보기로 했어요. 친구들에게 유럽 생활이 어떤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부딪혀보는 거랑 다를 수 있잖아요. 부모님에게 “내가 너무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습니다.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의 최고 장점은 드리블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윤도영의 최고 장점은 드리블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윤도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드리블입니다. 어릴 때부터 해온 본인만의 드리블 훈련이 있습니까.

학창 시절부터 드리블 연습을 아주 많이 했어요. 특히나 기본기 훈련을 지겹도록 반복했죠. 탄탄한 기본기가 있어야 드리블, 패스, 킥 등 모든 걸 잘할 수 있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볼을 가지고 노는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드리블에 중점을 뒀어요. 패스 연습은 많이 안 했습니다.

Q. 이유가 있었습니까.

드리블 훈련이 볼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거든요. 드리블을 잘하면, 패스는 저절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리블 연습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어요.

Q. 드리블 연습을 어떤 식으로 진행한 겁니까.

팀 훈련은 기본으로 했고요.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빼먹지 않고 한 건 리프팅이에요. 특히 저글링을 쉼 없이 반복했죠.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파트 앞 주차장으로 나갔어요. 거기가 아스팔트거든요. 주차장 공간에서 리프팅을 반복했습니다. 리프팅 하면서 주차장에서 집 앞까지 가는 게 일과의 마무리였죠.

Q. ‘기본기 연습’이라고 하면 ‘지루하다’고 표현하잖아요. 지루하진 않았습니까.

솔직히 재미는 없죠. 저도 진짜 하기 싫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했습니다. 처음 리프팅을 시작했을 때 100개밖에 못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1,000개, 5,000개로 나아갔죠.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이잖아요. 그 재미에 계속해서 했던 것 같아요.

Q. 윤도영도 사람이고, 여전히 어린 나이잖아요. 팀 훈련을 마치면 힘들기도 했을 거고요. 그럴 땐 어떻게 했습니까.

제 성격인 것 같은데요. 쉬면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저는 성공하고 싶거든요. 남들과 똑같이 땀 흘려선 성공할 수 없잖아요. 매일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땀 흘려야 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 훈련까지 다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안하거든요. 집엔 늘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Q. 드리블이 장점이니 상대 선수를 쉽게 제쳐내잖아요. 내가 연습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을 땐 어떤 느낌입니까.

좋아요.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려운데 희열이 있습니다. 축구가 팀 스포츠이긴 하지만, 일대일 상황이 대단히 많거든요. 내가 상대 선수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승리하면, 우리 팀의 승리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대방을 제쳐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맛에 드리블 연습을 더 열심히 하지 않았나 싶어요.

Q. 10~20대 선수들은 유럽 축구 많이 보잖아요. 윤도영도 유럽 축구 많이 봅니까.

저는 유럽 축구 잘 안 봐요. 제가 뛰었던 경기를 돌려보는 것 외엔 잘 안 보는 것 같습니다.

Q. 브라이턴 외에도 많은 팀이 윤도영 영입에 관심을 두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브라이턴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일 중점적으로 본 건 ‘이 팀이 나를 얼마만큼 생각하느냐’였어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팀이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죠. 핵심은 ‘성장’이었습니다.

대전하나시티즌 유소년 팀 시절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전하나시티즌 유소년 팀 시절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10대에 EPL 구단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건 재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아닙니까. 축구선수 윤도영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8살 때였어요. 취미반에서 볼을 찼죠. 축구가 아주 재밌는 거예요. 축구가 게임이나 다른 스포츠보다 압도적으로 재밌었죠. 축구가 자연스럽게 일상이 됐습니다. 제가 재능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감독님이 부모님에게 “축구를 제대로 시켜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해 주셨죠.

Q. 부모님이 바로 허락했습니까.

부모님이 처음엔 감독님의 제안을 거절하셨어요.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런데 제가 포기하지 않았죠. 부모님에게 계속해서 ‘축구하고 싶다’고 졸랐어요. 그렇게 9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게 됐죠.

Q. 그때부터 드리블 연습도 꾸준히 해온 거잖아요. 윤도영 세대는 모르겠지만, 윗세대들은 어릴 적 ‘드리블하면 혼났다’는 얘길 많이 하거든요.

우리 때도 그랬어요(웃음).

Q. 진짜?

점차 바뀌고 있긴 한데 여전히 드리블을 안 좋게 보시는 분들이 계셨던 것 같아요. 아웃사이드로 패스하면 ‘너 되게 건방지다’는 얘길 하셨던 분들도 계셨고요. 경기 중 패스를 감아서 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도 ‘건방지다’는 소릴 들었었죠. 드리블을 치면 ‘너는 혼자 욕심부리느냐’는 이야길 하시거나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윤도영이 일찌감치 유럽 진출을 목표로 잡은 이유를 알겠네요.

솔직히 그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죠.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Q. 학창 시절 힘들어서 축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는 없었습니까.

있었죠. 제가 성장이 느렸습니다. 키가 아주 작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땐 갑자기 살이 찐 거예요. 그때도 순간 스피드가 장점이었습니다. 제 장점이 완전히 사라졌던 거예요. 제가 친구들보다 왜소해서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깊이 고민했었어요.

Q.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깊은 고민 끝 어머니께 울면서 전화했어요. 어머니께 “나 이제 축구 안 하겠다”고 했죠. 그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맹장이 터졌어요. 축구를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어머니는 이때다 싶으셨는지 제게 “공부해라. 축구는 취미로 하자”고 하셨어요(웃음). 시간이 갈수록 축구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이대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죠. 다시 축구화 끈을 꽉 조였습니다.

Q.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살이 찐 이유가 있었습니까.

성장기였던 것 같아요.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때였죠.

Q. 축구를 포기할 뻔했던 시간을 지나서 쭉쭉 내달렸던 거군요.

한 번 힘든 시기를 겪고 나니 기회가 찾아왔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까진 측면 공격수로 뛰었어요.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았습니다. 그 포지션이 저랑 아주 잘 맞는 거예요. 축구가 아주 잘 됐죠. 그때의 포지션 변화가 제 학창 시절 전환점이지 않았나 싶어요.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대전에서 성장해 프로에 데뷔했잖아요. 대전은 윤도영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초등학교 6학년 말 이쪽으로 전학을 왔어요. 제 학창 시절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릴 때부터 대전 유니폼을 입고 뛰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선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상상조차 안 가죠. 대전이란 팀을 만나서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전에서 기회를 주신 덕분에 유럽 진출이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거고요.

Q. 대전 유소년 팀 시절엔 볼 보이도 했습니까.

했죠. 그때 바라본 형들은 하나같이 멋있었어요. 많은 팬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경기를 뛴다는 게 아주 부러웠죠. 또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아주 웅장하고 멋지잖아요. 하루빨리 이 경기장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고교 3학년 때 우러러보던 형들과 볼을 찼던 때의 기분은 어땠어요.

처음엔 신기했어요. 멀리서 바라보던 형들과 공을 찬다는 게 꿈만 같았죠. 형들이 재밌는 면도 많으세요. 우상처럼 우러러보던 형들이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니 아주 감사했습니다.

Q. 윤도영은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치고 있는 선수입니다. 동 나이대 선수 중에선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죠. 그런데도 느낀 프로와의 차이가 있습니까.

피지컬 차이가 엄청나게 커요. 경기 속도도 유소년 시절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죠. 프로와 고교 시절은 비교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아예 다릅니다. 프로가 괜히 프로가 아니라는 걸 부딪혀보면 확실히 느끼는 것 같아요.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윤도영. 사진=대한축구협회

Q. 2025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9월 27일부터 칠레에서 열립니다. 윤도영은 U-20 대표팀 핵심이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진출하면서 대회 출전이 불확실해졌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출전하고 싶어요. (이)강인이 형, (배)준호 형 등 대단한 선수가 출전했던 대회잖아요. 강인이 형은 대회 골든볼(최우수선수상) 수상에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고, 준호 형은 한국의 두 대회 연속 4강 진출에 앞장섰습니다. 선배들의 그런 활약을 보면서 자랐어요. 언젠가 저 무대에서 뛰는 걸 꿈꿔왔죠. 소속팀에서 차출을 해줄진 모르겠습니다.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의 모든 걸 쏟아내겠습니다.

Q. 3월에 브라이턴과 계약을 확정했잖아요. 당시 기분은 어땠어요.

제가 브라이턴으로 가서 계약서에 사인했습니다. 꿈 같았어요. 브라이턴에 있는 내내 믿기지 않았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Q. ‘브라이턴의 환경에 아주 놀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6성급 호텔 같았어요. 시설이 최고급 호텔만큼 좋았습니다. 아주 놀랐던 일도 있었어요.

Q. 어떤 일이었습니까.

브라이턴 클럽하우스 사이드에 잔디 한 면이 있었어요. 훈련장은 중앙에 다 갖춰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이드에 있는 잔디이니 인조 잔디인가 보다 했죠. 잔디를 만져봤어요. 엄청나게 관리가 잘 된 천연 잔디였습니다. 흠집 하나 안 보일 정도로 잔디 관리가 엄청나게 잘 되어 있었어요.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파비안 휘르첼러 감독. 사진=AFPBBNews=News1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파비안 휘르첼러 감독. 사진=AFPBBNews=News1

Q. 파비안 휘르첼러 브라이턴 감독과 나눈 얘기가 있습니까.

계약서에 사인할 땐 못 뵐 줄 알았어요. 브라이턴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셨더라고요. 제가 사진으로만 감독님 얼굴을 보고 간 거잖아요. 처음엔 감독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젊으신 거예요.

Q. 1993년생 감독 아닙니까.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보다 어린 감독입니다.

휘르첼러 감독님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감독님이 “몇 경기 챙겨봤는데 좋은 인상을 받았다. 환영한다”고 해주셨죠.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에서 맹활약 중인 미토마 카오루(사진 맨 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AFPBBNews=News1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에서 맹활약 중인 미토마 카오루(사진 맨 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AFPBBNews=News1

Q. 브라이턴엔 일본 간판스타인 미토마 카오루가 있잖아요. 만나본 적 있습니까.

제가 브라이턴을 방문했을 땐 A매치 기간이었어요. 선수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Q. 팀에 성공한 아시아 선수가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좋아요. 저랑 비슷한 유형의 선수잖아요.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팀 선배인 미토마가 밟았던 길을 따른다면,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Q. 솔직하게 다 물어볼게요. 3월 브라이턴과 계약 체결 후 대전에서의 경기력이 확 떨어졌습니다. 밖에서 볼 땐 잘 안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변명일 수 있겠지만, 제가 올해 팀의 동계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어요. 2월에 U-20 아시안컵이 있었거든요. 2025 U-20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대회였습니다. U-20 아시안컵에 모든 걸 쏟아냈죠. 그러다 보니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할 몸을 만들지 못했어요. 특히 U-20 아시안컵에서 2~3일 휴식 후 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을 반복했어요. 피로도가 엄청나게 쌓였던 겁니다.

Q. 그 대회가 끝나자마자 소속팀 경기를 뛰지 않았습니까.

브라이턴으로 향하기 전까지 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싶었거든요. 무리였습니다. U-20 아시안컵 끝나고 휴식을 취해야 했어요.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경기를 계속 뛰다 보니까 부상이 오더라고요. ‘몸이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대전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뛰었거든요.

Q. 몸에 큰 무리가 왔군요.

확실하게 쉬던가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게 너무 후회스러워요.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무리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솔직히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운동 강도를 올리고, 마사지 시간을 늘리는 등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안 됐거든요.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윤도영.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Q.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합니다.

대전 팬들에게 진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 뒤 브라이턴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너무 속상했죠.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있잖아요. 신경을 안 쓰려고 했는데 아프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많이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Q. 어떤 말이 제일 상처가 됐어요?

제 경기력이 뜻대로 올라오질 않으니까 ‘윤도영 쟤 몸 아끼나?’,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는 등의 얘길 들었어요. 아주 속상했습니다.

Q. 윤도영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18살이거든요.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엔 대단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했어요. 제가 유럽으로 가면 더 많은 경기를 뛰어야 할 겁니다. 국가대표팀에서 자릴 잡으면 그보다 많은 경기를 뛰어야겠죠. (손)흥민이 형이나 강인이 형처럼 장거리 이동 후에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려면,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거예요. 몸이 안 좋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걸 느꼈습니다. 어떻게 관리해야 몸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지 터득했죠. 좋은 경험을 더한 시간이었습니다.

대전하나시티즌 황선홍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대전하나시티즌 황선홍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Q. 시즌 중에 황선홍 감독과 면담을 진행했잖아요. 그 이후 경기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황선홍 감독과 어떤 얘기를 나누었습니까.

황선홍 감독께서 “조금 쉬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감독님에게 드릴 말씀이 없었죠.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 건 저니까.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이럴 거였으면 ‘몇 경기 쉬고 확실하게 몸을 끌어올려서 경기에 나서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죠. 많이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Q. 지금 몸 상태는 어때요?

6월 A매치 기간에 4일 휴가를 받았어요. 그때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푹 쉰 거예요. 그렇게 4일 쉬고 다시 훈련하니까 몸이 엄청나게 가볍더라고요. 작년 몸이 좋았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거든요. 자신감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소득이지 않나 싶습니다.

Q. 대전을 떠납니다.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저의 학창 시절 꿈은 명확했습니다. 대전 유니폼을 입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수많은 팬의 환호를 받으며 뛰는 것이었어요. 대전은 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줬습니다. 대전은 제가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도와준 팀이에요. 그런 팀에 더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너무 속상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미안한 마음을 풀어낼 기회가 올 겁니다. 그때 꼭 갚겠습니다. 제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진심으로 응원해 주신 많은 분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Q. 황인범, 배준호 등 대전 출신 선수가 2024-25시즌 마치고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았잖아요. 유럽파 선배들과 이야기 나눈 것이 있습니까.

직접적으로 만나 뵐 기회는 없었어요. (배)준호 형이 오셨을 때 구단 유튜브를 통해서 제게 메시지를 남겨주셨더라고요. 준호 형께서 ‘윤도영이 조급해 보이는 것 같다’는 질문을 받고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됐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대한축구협회
윤도영(사진 왼쪽). 사진=대한축구협회

Q. 진짜 유럽으로 갑니다. 브라이턴에서 바로 뛰는 건 아니잖아요. 임대갈 팀은 정했습니까.

임대는 갈 건데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Q. 선호하는 팀이 있습니까.

제 스타일이랑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킥앤러시 스타일의 리그나 팀보다는 전술적인 역량을 중요시하는 곳이 좋아요. 아기자기하게 만들어가는 축구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한 출전 기회인 것 같아요. 경기에 꾸준히 나서면서 제 능력을 증명해 나가고 싶습니다. 주변에선 네덜란드, 벨기에를 많이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Q. 어떤 각오로 유럽으로 향합니까.

제가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될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저는 모든 걸 쏟아낼 거예요. 지금껏 그래왔습니다. 변치 않을 겁니다. 제가 어디서 뛰든 제가 ‘대전의 아들’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대전 팬들이 항상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윤도영. 사진=이근승 기자

Q. 재밌어서 축구 시작했잖아요. 요즘도 축구 재밌어요?

축구는 할수록 재밌는 것 같아요. 매력이 한둘 아니라서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둥그런 공을 발로 컨트롤 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팀으로 똘똘 뭉쳐서 상대와 우열을 겨루는 게 제일 큰 매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Q. 윤도영의 꿈은 무엇입니까.

2025-26시즌엔 임대를 갈 것 같아요. 거기서 제 기량을 잘 갈고닦겠습니다. 성장을 일궈서 꼭 브라이턴 공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싶어요. 제게 유럽 진출이란 꿈을 이루게 해준 브라이턴에 좋은 활약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국가대표팀에 데뷔하는 날도 올 것이라고 믿고요. 마지막 바람이라면, 제가 리오넬 메시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메시 보고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사진=AFPBBNews=News1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 사진=AFPBBNews=News1

Q. 메시가 롤 모델이었군요.

메시와 볼 한 번 차보는 것도 꿈이에요. 꿈같은 일이죠(웃음). 저는 꿈이 참 많습니다. 다 이루려면, 부지런히 제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할 겁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덕암=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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