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랭킹 ‘톱5’ 첫 진입,
96년생…조명우 김준태 김행직
잇는 90년대생 황금세대
조명우(27)와 김행직(32), 김준태(29). 나란히 전국 3쿠션랭킹 2~4위에 올라있는 이들은 세계 톱클래스 선수다. 또하나 공통점은 90년대생으로 한국3쿠션 ‘황금세대’라는 점이다. 김행직이 92년생, 김준태 95년생, 조명우 97년생이다.
“최근 상승세는 디비전리그, 서울월드컵이 계기”
최근 들어 이 황금세대 반열에 다가서고 있는 또다른 90년대생 선수가 있다. 96년생 이범열(28)이다. 조명우보다 한 살 많고, 김준태보다는 한 살 적다.
이범열은 2017년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서 준우승하며 한국3쿠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후 국내 중상위권을 유지했지만, 기대만큼 재능이 만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태백산배서 공동3위에 올랐고, 4개월 후인 지난 11월 대한체육회장배에서 드디어 전국대회 정상을 찍었다. 전국랭킹서도 처음 ‘톱5’에 들며(5위)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선수데뷔 13년만의 간절했던 첫 우승인 만큼 이범열은 “정말 기쁘고 뿌듯하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더 높은 비상을 꿈꾸는 이범열을 시흥시당구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이곳은 시흥시당구연맹 선수들의 연습장이다.
▲최근 전국대회에서 처음 우승했다. 선수데뷔 13년만인데.
=정말 기뻤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우승은 꿈도 못꿨다. 그때는 전국대회에 나갈 때 목표가 ‘지더라도 우리나라 10등 안에 있는 선수에게 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지난 2022년 말 군대에서 제대한지 한달만에 출전한 전국대회(천년의빛 영광전국당구대회)에서 공동3위에 입상했고, 이후 우승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욕심이 지난 2년 동안 발목을 잡았다. 물론 이후에도 꾸준히 16~8강에 들었지만 항상 거기까지였다. 그런 흐름이 반복되다 보니 최근에는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우승이 다가 아니니 열심히 쳐보자’. 이번 대회도 이런 생각으로 나섰고, 욕심 부리지 않고 한판 한판 열심히 치다 보니 우승컵이 눈앞에 있었다.
▲전국랭킹도 처음 ‘톱5’에 들었다.
=지난해 목표가 ‘톱10’에 드는 것이었고, 올해는 그것을 유지하는게 목표였다. 지난 7월 태백산배에서 공동3위에 입상하며 ‘올해 목표를 이룰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대한체육회장배에서 우승하고 5위로 상승,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뤘다. 한 손에 드는 순위라니. 정말 뿌듯하다.
▲최근 1~2년 동안 상승세가 완연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되돌아보면 중요한 포인트가 두 개 정도 있었다. 첫 번째로는 KBF디비전리그를 뛰면서 상당히 좋은 흐름을 탔다. ‘시흥시체육회’팀(이범열 서창훈 이정희 황봉주 김주영 정역근)으로 지난 2023년부터 시작해 그 해 D3리그서 우승했고, 2024년에도 D2리그 정상에 올랐다. 시합수가 많아지니 경기 감각과 집중력이 계속해서 유지됐고, 당구도 늘었다.
“LG유플러스배, 잔카세이프배 등 대회 많았으면”
새해 목표는 국내 ‘톱5’ 이상, 세계선수권 출전
두 번째는 우승한 대한체육회장배(2024.11) 직전에 치른 서울3쿠션월드컵이었다. 당시 1차예선(PPPQ)부터 출발해 32강 본선리그까지 진출했는데 아쉽게 탈락했다. (이범열은 같은조 다오반리를 꺾었으나 브롬달과 멕스에게 패하며 1승2패 조3위로 탈락했다) 특히 내 입장에선 전설적인 존재인 에디 멕스(세계 6위, 벨기에)와의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범열은 멕스에게 27:40(12이닝)으로 졌으나, 경기 중후반까지 접전을 펼치며 애버리지 2.250을 기록했다)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멕스라는 대단한 선수와의 경기에서 내용적으로 팽팽하게 맞섰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이를 계기로 자신감이 붙었는데, 그게 대한체육회장배 우승까지 이어졌다.
▲선수데뷔 후 꽤 오랜기간 우승이 없어 마음고생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8~4강전 상대가 대부분 조명우 허정한 김행직 선수 등 국내 톱랭커들이었다. 질만한 선수들에게 졌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실력자들과 계속 붙으며 당구를 배워가고, 더불어 내 당구를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올해 28세로 현재 세계 톱랭커인 조명우 김행직 김준태와 같은 90년생이다. 이런 선수들 사이에서 압박감을 느낀 적은 없었는지.
=선수생활 초반엔 압박이 조금 있었지만, 이후에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김행직 김준태 선수는 모두 형이고. (조)명우는 동생이지만 어릴적부터 기량이 워낙 남달랐던 선수였다. 이 선수들보다 내 걸음이 느린 것일 뿐, 그걸 뒤쫓아가야겠다는 조바심은 없었다. 오히려 (정)예성이 같이 요즘 치고 올라오는 20대 초반 선수들과 시합하며 압박감, 조바심을 많이 느꼈다.
그런 친구들에게 지면 ‘여기까지 지면 안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 따라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마음가짐을 바꿨다. 인정할 부분을 인정했고, ‘질 수도 있는거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오히려 경기력이 살아났다. 그 동안 지는게 무서워서 제 경기력이 안 나왔던 것이다.
▲선수생활하며 슬럼프는 없었나.
=슬럼프는 톱랭커에게나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슬럼프라면 그건 그냥 내가 못 친 것이다. 물론 운이 나쁘고, 유독 안 풀리는 흐름이 반복되면 심적으로 힘들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슬럼프까지는 아니고, 그냥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셨다. 그 당구장엔 이전에 PC방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갖다놓은 컴퓨터가 있었고, 처음엔 컴퓨터게임을 하러 당구장에 갔다. 물론 중간중간 재미삼아 당구도 쳐보곤 했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 아버지께서 재미있는 제안을 하셨다. 당구경기를 한 판 이길 때마다 용돈을 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용돈 벌려고 당구를 많이 쳤는데, 한 달 만에 당구수지가 4구 120점에서 300점까지 올랐다. 그때 용돈을 많이 벌어 고가 컴퓨터를 장만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당구에 재미가 붙어 꾸준히 치기 시작했고, 중3 때 ‘서천한산모시배’ 전국 학생부대회에서 입상(공동3위)했다. 이후 서울 가산동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대대를 처음 접하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입문했다.
▲이충복 선수 제자로도 유명하다. 이충복 선수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이범열은 스승 이충복 선수를 대장님이라고 불렀다) 대장님을 처음 뵌 건 고1때였다. 당시 대장님께서 우승한 아시아3쿠션선수권(2011 제5회 아시아3쿠션선수권) 대회를 직관했는데, 그때 대장님 당구치는 모습에 매료됐다. 스트로크가 마치 기계처럼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듬해 곧바로 대장님께 찾아가 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난 2022년 말까지 10여 년 동안 대장님과 함께했다. 중간에 조건휘(PBA) 한지승 선수와도 함께 공을 배웠다.
▲이충복 선수는 이범열 선수 강점으로 우직함을 꼽았는데.
=대장님은 ‘호랑이선생님’이다. 지도할 때 굉장히 무섭다. 항상 당구로 이뤄진 삶을 살라고 강조하셨다. 이 때문에 엄청 연습장에 불려 다녔다. 대장님 지도 스타일을 아는 분들은 내가 이번에 우승할 때 “너는 그걸 견뎠으니 우승할 만 하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대장님께 공을 배울 때 나는 나름 잔머리를 잘 굴린다고 생각했다. 다른 제자들은 잔머리를 얼마나 더 굴렸길래 대장님께서 내가 우직하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 하하.
▲이번 대한체육회장배 우승때도 이충복 선수를 가장 먼저 찾았다.
=우승하자마자 대장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내게 밀린 전화가 많을 거란걸 아셨는지 “축하한다” “사랑한다” “나중에 술한잔 하자”라며 짧게 통화했다. 이젠 서로 다른 단체에서 뛰다 보니 이전보다 시간이 잘 안 맞아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연락은 자주 주고받는다.
▲적지않은 선수들이 PBA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본인은 연맹에서 뛰고 있다. 프로당구에 대한 생각은.
=PBA와는 과거부터 뭔가 잘 맞지 않았다. 프로당구 출범 당시 갈 여건은 됐지만, 출범 다음달 입대 예정이었다. 전역 후엔 스스로도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됐기 때문에 섣불리 프로에 가기 어려웠다. 이후 시흥시체육회 소속 선수가 되면서 프로에 갈 생각은 완전히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PBA는 상금면에서 부러운 부분이 있다. 다만 경기방식이 선수에게 다소 가혹해 보이기도 한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연맹에서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프로로 가는 일은 없을 거 같다. 오히려 PBA와 연맹이 상생하는 환경에서 서로 대회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구연맹에 바라는 게 있다면.
=시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시합수가 늘어나며 많은 득을 봤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과거 슈퍼컵, 잔카세이프티배, LGU+컵과 같은 이벤트시합들이 최근 줄어드는 추세인데, 이런 대회들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국내대회에 비해 3쿠션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선 자주 보기 힘든데.
=국제대회도 당연히 나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3쿠션월드컵을 다니려면 경제적인 부담도 있고, 스스로 경쟁력도 더 키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전국대회에서도 최상위권 선수를 이기기 힘든데 무턱대고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흐름이 좋기 때문에 새해부터는 가까운 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부터 나가려한다. 일단 베트남대회는 무조건 나가고, 여건이 되면 튀르키예 등 다른 나라 대회도 고려해볼 것이다.
▲롤모델은 당연히 이충복 선수인가.
=물론이다. 당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대장님이다. 특유의 스트로크를 비롯해 모든 걸 닮고 싶다.
▲친한 선수를 꼽자면.
=아무래도 시흥당구연맹 선수와 가깝다. 전국대회 나가면 늘 숙식을 함께한다. 그 중에서도 전국대회 복식 파트너인 김주영 선수와 가장 친하다. 그 밖에 (조)명우, (김)준태 형과도 친하다.
▲당구용품은 뭘 쓰는지.
=큐는 TPOK의 루츠케이큐를 쓴다. 허정한 선수 등 세계 톱랭커들이 쓰는 검증된 큐이고, 개인적으로도 이 큐로 전국대회 첫 우승을 이뤘기에 애정이 깊다. 장갑, 초크와 같은 소모품은 니즈(NIZ) 제품을 쓴다. 손에 땀이 많은 편이라 항상 장갑을 끼는데, 니즈 장갑은 재질이 좋고 봉제선도 없어 착용감이 좋다.
▲새해 목표는.
=국내랭킹 5위 안쪽을 유지하되, 더 높은 순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 정도 랭킹을 유지하면 세계3쿠션선수권에 나갈 요건이 갖춰진다. (현시점 UMB랭킹을 기준으로 조명우(2위) 김준태(4위) 허정한(11위) 김행직(16위)은 ‘톱랭커시드’를 받아 세계3쿠션선수권에 출전한다. 다만 이들은 국내 1~4위이기 때문에, 5위 이범열이 국내랭킹 차순위 자격으로 한국에 1장 주어지는 ‘아시아캐롬연맹시드’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3쿠션월드컵도 더 자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당구선수로서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고마운 분들에게 한 마디.
=우선 부모님께 가장 감사드리고, 대장님(이충복)께도 항상 감사드린다. 또 제가 당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시흥당구연맹 김종근 회장님과 대성종합통신 천형철 회장님을 비롯, 후원사 TPOK 전남수 대표님, 니즈 김준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제 곁을 항상 지켜주는 여자친구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를 계속 응원해주시고, 때로는 꾸짖어주시는 팬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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