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BA를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더욱이 1부투어 승격도 확정됐는데.
=PBA에서 3시즌 뛰었는데, 실망한 부분도 있고 싫어졌다. 2019년 트라이아웃 거쳐 1부투어 선수가 됐을 때 빌리어즈TV와 인터뷰하면서 “트라아이웃을 통과해 행복하다”고 한 적 있다. 그런데 막상 3시즌 경험해보니 내 생각과 많이 다르더라.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갔는데, 선수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3시즌 뛰었으면 어느 정도 적응할 법도 한데.
=PBA 출범 때 책임자들이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구로 먹고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PBA로 간 선수들 대부분 그걸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이뤄졌고, 앞으로 그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또한 와일드카드 선발과 후원업체 패치 붙일 때 특정인을 위해 규정이 바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출범할 때 시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LPBA에는 64강 시드가 있지않나. 그렇게 규정이 바뀌어도 그걸 누구 하나 말을 못한다. 선수권익을 위해 나서는 곳도 없다.
△그래도 연맹대회때보다 상금이 많이 늘었고, 팀리그도 생기지 않았나.
=상금이 많이 늘어난건 사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팀리그도 분명 선수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상위권 몇 명한테 해당되는 것이다. 팀리그는 나이 많은 선수는 성적 좋아도 기회가 오지 않는다. (정역근 선수는 3시즌 동안 드림투어 우승상금 1000만원 포함, 186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광명당구연맹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광명은 내가 자란 곳이고, 2년 동안 발로 뛰면서 광명당구연맹을 만들었다. 제가 PBA로 가고나니 광명연맹 활동이 거의 없더라. 그러던 차에 새 회장에게서 “도와달라”고 연락왔다. 마침 당구연맹에서도 (PBA선수를) 받아준다고 했다. 그래서 옮기게 됐다. 광명연맹에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최근에 열린 드림투어 6차전서 우승했는데.
=PBA에서 3시즌을 뛰었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그래서 출전했는데, 덜컥 우승까지 했다.
△(광명연맹으로 돌아갈 때) 뭔가 보장받은건 없나.
=주변에서 그렇게 오해하더라. 아무것도 없다. PBA 생기기 전부터 도민체전때 광명대표로 나갔다. 이번에 PBA를 떠난 48명 중 박근형과 전성일에게도 광명연맹에 와서 같이 활동하자고 했다. 언젠가는 광명에 실업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명연맹에서 하고 싶은 일은.
=기회가 돼서 (광명)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당구부가 창단되면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 다행히도 광명연맹 안갑수 회장과 광명시체육회에서 많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당구연맹과 PBA 대회를 두루 경험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연맹대회때는 추억과 낭만이 있다. 펜션서 함께 먹고자며 동료간 정도 느낀다. PBA는 시합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동료가 아니고 경쟁자일뿐이다. 프로니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방식도 연맹대회(40~50점제와 1점제)에선 실력 좋은 선수가 상위권에 입상하는 편이다. 반면 PBA(세트제, 2점제)는 다소 실력이 부족한 선수도 입상할 수 있다. 변수가 많다. 세트제다보니 경기흐름이 쉽게 바뀔 수 있고,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연맹대회든 PBA대회든 선수마다 호불호가 다를 수 있다.
△요즘 어디서 연습하나.
=광명시 J빌리어드에서 주로 연습한다. 하루에 두 게임 정도 치고 두세 시간씩 따로 연습한다. 지금은 7월에 열리는 문체부장관기를 대비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김치빌리어드 김종률 대표님께 감사말씀 드리고 싶다. 선수들이 어려울 때 항상 큰 힘이 된다. [김두용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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