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담도·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울 뿐 아니라 진행 속도가 빠르고 예후도 좋지 않아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약 3만명의 간·담도·췌장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간암과 췌장암은 각각 국내 암 사망률 2·4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세브란스병원 암 치료의 키워드는 '개인 맞춤형'과 '환자의 선택폭 확대'다. 이 병원은 최신 치료법을 적극 도입해 간·담도·췌장암 환자에게 발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올 하반기에는 '개인 맞춤 신약 치료 클리닉'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암병원 개인맞춤치료센터가 주도하는 이 클리닉은 환자의 유전체 정보와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 등을 바탕으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도출하기 위해 '분자종양 다학제 회의'를 가동할 예정이다. 또 종양내과에서 진행 중인 신약 임상시험에 환자를 연계해 보다 다양한 치료 기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심효섭 연세암병원 개인맞춤치료센터장은 "췌장암과 담도암은 최근 들어 'KRAS ctDNA' 'GATA6' 'CD151' 등 새로운 유전자 바이오마커가 잇따라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예후가 워낙 불량한 암종인 만큼 이번 클리닉이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병원은 'IRE(비가역적 전기천공술)'를 적극 도입하면서 난치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IRE는 전극을 이용해 종양 내 세포막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낸 뒤 세포의 괴사를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혈관이나 담도 등의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병원 중에서 IRE를 간암과 췌장암 치료에 적용하는 곳은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이 병원에 따르면 2023년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이래 IRE 시술을 받은 환자는 총 42명이다. 이들의 중위수 전체 생존기간은 15.5개월로, 기존 항암화학 치료의 생존기간(9.2~11.4개월)보다 향상된 결과를 보였다.
환자들이 대형 병원 중 세브란스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입자 치료다. 2023년 국내 최초로 도입된 중입자 치료기는 지난해 5월 간암과 췌장암에 확대 적용됐다. 이후 1년여 동안 간암 환자 20명, 췌장암 환자 110명이 이 치료를 받았다. 중입자 치료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중입자센터에는 지금도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대기 기간은 약 6개월, 이달 예약해도 치료는 연말께에나 가능하다.
이익재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췌장암은 표준 치료법이 제한적인 만큼 새로운 선택지에 대한 수요가 높다. 특히 우리 병원에서는 SIT(외부기관의 위탁을 받은 신약·신치료 임상시험)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에서 시행 중인 췌장암 관련 SIT는 연평균 400건에 달한다. 여기에 참여 중인 임상시험 전문인력은 120명이 넘는다.
치료 성과는 숫자로도 입증됐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 병원의 간암 상대 생존율은 39.9%로, 국내 평균인 37.7%보다 높게 나타났다. 담도암의 경우 세브란스는 29.2%, 국내 평균은 28.5%였다. 췌장암 생존율 역시 16.5%로, 국내 평균(13.9%)을 웃돌았다.
한편 이 병원은 로봇수술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5세대 다빈치 기기를 추가 도입하는 등 외과적 치료 역량을 고도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최근에는 로봇수술 영역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자동 시야 추적, 해부학 구조 인식 등 보조 기능을 고도화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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