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차 진행도 순탄하지 않았다. 단계마다 재판부가 대면을 요구하면서 일정이 지연됐고 회사는 불확실성 속에서 버텨야 했다. 회사 관계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회생을 신청했는데, 면전에서 회생 의지를 폄훼당하니 기업을 살려보려는 시도 자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도산 전문 B변호사는 "일부 지방법원엔 회생과 관련해 '왜 면책을 해줘야 하느냐'는 시각을 가진 판사가 많다"며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전국에 도산전문법원이 설립되더라도 회생제도의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회생을 신청하는 기업들이 서울로 '관할 쇼핑'에 나서는 배경엔 지방법원의 회생제도에 대한 인식 부족과 실무 경험 부족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내년부터 대전, 대구, 광주 등의 주요 거점에 도산전문법원이 새로 생기지만 서울회생법원의 실무 준칙과 실무례 등이 함께 확산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7~28일 열린 '도산법 분야 연구회' 회의에선 서울회생법원이 정립한 실무 기준이 향후 신설될 도산전문법원과 지방법원 파산부에도 공유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법원별 실무 편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산법 분야 연구회는 도산 사건을 담당하는 전국 법원 판사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해왔다.

문제는 법원이 사건을 계속 들고 있으면 기업 입장에선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생 절차를 빠르게 졸업하고 시장에 나가도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회생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수주가 더욱 어려워지고 경영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 결국 기존 계획안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판단할 때 법원마다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기업의 향후 사업계획을 고려해 비교적 유연하게 절차를 진행하는 재판부도 있지만, 일부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요건을 요구한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예컨대 C법원의 한 재판부는 회생계획안 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법원으로 불러 계획안에 제시된 매출액 예상치의 근거가 무엇인지 상세히 소명하라고 지시한다. 만약 채무자 회사가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면 계속 회생계획안 수정을 명령한다. 신규 거래처를 확보했거나 신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답하면 "아직 실적이 없는데, 그런 내용을 반영해도 되느냐"고 되묻는다고 한다. 도산 사건을 다수 맡아온 한 변호사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회생제도 취지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담 인력이 없어 사건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법원 관계자는 "일반 지방법원에선 판사가 민형사 사건과 파산부 사건도 같이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비전문법원에 회생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서울·부산·수원회생법원 등의 도산전문법원을 제외한 법원에 접수된 사건 비율은 2023년 39.7%에서 지난해 33.8%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지방에선 "도산 전문 변호사의 일거리가 없어질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대전·대구·광주에도 도산전문법원이 새로 설치되지만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회생법원이라는 간판만 내걸고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면 지역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원 초기 1~2년이 실무 기준을 정착시키고 법원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서울회생법원 등이 선제적으로 마련한 실무 기준을 참고해 실무 준칙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민우 기자 /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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