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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삼킨 '로스쿨 블랙홀'…행시 합격자도 기웃

리트 시험에 年 2만명 몰려
취업 어려워지자 대거 지원
"문과, 로스쿨 징검다리 전락"
교육격차 심화·도입취지 무색
李대통령 "음서제될까 우려"
일각선 사법시험 부활 목소리

  • 이용익/박민기
  • 기사입력:2025.06.26 17:58:43
  • 최종수정:2025.06.26 17: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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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름만으로 문과도 턱턱 취업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아서 어떻게든 인서울 로스쿨에 가보려 합니다."

명문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K씨는 지난해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점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올해 다시 시험을 치른다. 서울권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높은 리트 점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행정학과를 졸업한 30대 P씨도 대기업에 재직 중이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퇴근 후 로스쿨을 대비한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는 P씨는 "문과 출신 직장인으로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느껴져 전문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로스쿨이 사회·상경·인문계열 등 문과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경찰대·행정고시 출신 등 공무원은 물론이고 대기업 직장인까지 전문직을 꿈꾸며 로스쿨에 도전하고 있어서다. 이처럼 문과생이 로스쿨에 몰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일 마감된 리트 최종 응시 원서 접수 인원은 1만9057명으로 작년(1만9400명)에 이어 2년 연속 1만9000명을 넘어서면서 조만간 2만명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리트 응시자의 80%가 문과생이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사회계열 23.46%, 상경계열 20.11%, 인문계열 19.13%, 법학계열 14.37% 등이다. 로스쿨이 문과생의 블랙홀이 되면서 문과계열 교수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한 사회과학계열 학과 교수는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대학원 진학 등을 권유했지만 열에 아홉은 로스쿨을 가겠다고 한다"며 "문과계열 학과 전체가 로스쿨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 과정 중 하나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많은 문과생이 로스쿨에 도전하고 있지만 로스쿨 진학이 곧 변호사 자격증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닌 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원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로스쿨 정원은 2000명,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1700여 명이라 매년 법조 낭인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변시는 5회까지 응시할 수 있는 만큼 응시 인원도 누적되면서 시험 첫해인 2012년 87.15%였던 합격률은 현재 52.3%까지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로스쿨 재학생들의 지상 과제는 '변시 합격'이 됐다. 이를 노리는 관련 사교육 시장도 커지고 있다. 메가엠디가 운영하는 메가로스쿨과 메가로이어스에 이어 시대인재도 시대인재로스쿨 브랜드를 올해 내놓았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평균 등록금만 해도 지난해 학기당 약 819만원에 달하는데 최신 판례를 아우르는 인강 무제한 패스 가격이 300만원을 웃돌다 보니 로스쿨 재학생들의 금전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정상적으로 듣는 인강은 '빛강', 불법으로 녹화한 인강은 '둠강'이라는 은어까지 존재할 정도로 불법 강의도 성행한다. 수도권 로스쿨에 재학 중인 L씨는 "과목마다 범위도 워낙 방대해 변시에 대비하기 위해 둠강을 듣고 있다"며 "법을 배우는 학생인데 불법을 저질렀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로스쿨 진학자와 변호사 수 간에 괴리가 있다 보니 법조계에서도 변호사 배출 수 확대·감축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진다. 국내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현재 1700명대를 웃도는 신규 변호사 배출 수를 최종 600~700명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실행이 어려운 만큼 변협은 지난 4월 법무부 앞에서 시위를 열고 1차 타협안으로 1200명을 제시했다. 변협 측은 "일본의 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가 3.8명이지만 한국의 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는 7.0명으로 2배"라며 "과거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호사 수가 늘면서 경쟁 심화 등 국내 법률 시장이 악화일로를 걷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반면 로스쿨 등 학계는 신규 변호사 배출 인원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기존 변호사들이 수임 감소 등을 이유로 변호사 배출 수를 줄이자는 주장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교육 불평등과 지역별 교육 격차 심화 해소를 위해 사법시험이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로스쿨이 과거제가 아닌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며 공감했다.

[이용익 기자 /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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