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선대회장은 한국의 차(茶) 문화를 복원하고 계승·발전시킨 다인(茶人)이자 사회적 책임을 다한 기업인이었다. 태평양장학문화재단(현 아모레퍼시픽재단) 등은 그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세운 공익재단이다. 한국경영학회는 내년 서 선대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를 '대한민국 기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27일 헌액식에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만나 선친의 삶과 경영에 대한 철학을 들었다.
―헌액을 축하한다. 선친을 대신한 소감은.
▷매우 영광스럽다. 기업 경영 최고 전문가 여러분이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의 기업가정신을 높이 평가해주신 것이기에 더욱 귀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세상에 기여하는 데에 그 존재 의미가 있다"고 늘 강조하셨던 선친을 따라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감동을 전하는 기업,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
―아들이 아닌 기업인으로서 선친을 평가한다면.
▷돌아보면 이렇다 할 산업 기반도 없던 시절부터 선친께서는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에 헌신하셨다. 좋은 원료에 대한 고집, 품질제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국 화장품 연구·제조 기술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한국 화장품 산업의 오늘은 아름다움의 힘을 믿고 우직하게 한길을 걸었던 한 기업가의 꿈과 집념 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후배 경영자로서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았던 선친의 집념과 도전정신에 존경심과 경외심을 느낀다.
―선친께서 생전에 주신 가르침 중에 자주 되새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선친께서 식사 자리에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차별화를 해서 남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선친의 신념과도 같은 그 말씀은 지금 아모레퍼시픽의 근간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는 "거짓부렁을 하지 마라"는 거다. 선친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본인이 하는 일과 말에 있어 항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선친의 '차(茶)' 사랑은 유명하다. 선친의 차 애호가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개성의 인삼밭을 보고 자란 선친은 어려서부터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셨고, 세계 여러 지역으로 출장을 다닐 때마다 그 나라의 식물원을 찾곤 하셨다. 그때마다 한국에도 식물과 자연,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 소망이 차 문화 복원 사업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무모한 사업이라고 주변의 반대가 거셌다. 그런데도 선친께서는 돌과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를 개간하셨다. 그게 지금의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100만평의 녹차밭과 오설록 티뮤지엄으로 거듭났다.
선친께서 차 사업을 일군 과정은 어린 시절의 내게 '눈앞에 답이 보이지 않고, 갈 길이 멀어 보여도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나 역시도 공익재단인 '서경배과학재단'을 통해 신진 생명과학자를 지원하고 있는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선친처럼 계속 노력하고자 한다.
―선친께서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해 오셨다. 선친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인데.
▷기업과 개인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확고하셨다. 늘 나에게 "사람은 이로운 일을 통해 이름을 남겨야 한다. 돈을 벌 때는 최선을 다해서 벌고, 번 돈은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승처럼 써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잊지 못하는 기억 중 하나가 선친께서는 늘 너무 낡아 해어져 가는 벨트를 차고 다니셨다. 자식들이 그 벨트를 새것으로 바꿔드리려고 작전을 짜서 누구는 새 벨트를 사오고 누구는 헌 벨트를 없애버렸다. 그런데 그런 선친께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잔칫날만큼은 음식이 남아야 좋아하셨다. 그렇게 매일 "아껴라"고 강조하셨는데 음식이 모자라면 언짢아 하셔서 어린 마음에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그만큼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던 거다.
―젊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선친의 심정이나 상황을 지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이 있다면.
▷1990년대 초 회사가 크게 어려웠던 적이 있다. 당시 국내 화장품 산업이 급격히 확장하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유행처럼 번진 사업 다각화에 편승하며 사업이 어려워졌다.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선친께서 태평양증권을 매각하려 하셨다. 당시 증권업은 최고의 유망 업종이었고, 매각 직전 3년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한 건실한 회사였다. 나는 다른 회사를 팔았으면 했지만, 선친은 결심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런데 결국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건실한 회사였기에 좋은 가격에 팔렸고, 회사는 그해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선친께서는 "반드시 하나의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이 가장 사랑하며 잘하는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마음과 선택을 이제는 십분 이해한다.
故서성환 선대회장
△1924년 황해도 출생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 창립 △1948년 국내 최초 브랜드 화장품 메로디크림 발매 △1964년 국내 최초 오스카 화장품 20여 종 수출, 방문판매제도 도입 △1966년 세계 최초 한방 화장품, ABC 인삼크림 출시 △1979년 녹차 사업 공표 및 제주 차 밭 개간 △1984년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1990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2003년 타계 △2004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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