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단위계획·관련 조례 제정해
풍납토성 등 유산지역 우선 적용
日, 도쿄 용적 이전 허용 60여곳
초교·맨션 등 재건축 적용해 화제
서울시가 문화재 보호 등 규제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용적률을 다른 건물이나 지역에 활용하는 용적이양제를 ‘결합관리제’라는 명칭으로 도입할 전망이다. 문화유산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시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활용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는 ‘규제지역의 유연한 도시관리 방안 모색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미사용 용적률을 활용하기 위한 도시 관리 방안으로 ‘서울형 결합관리제도’를 제시했다. 류인정 도시류 대표는 주제발표에서 “역사 보전 지역과 개발 활성화가 필요한 지역을 연계한 새로운 도시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며 용적률 이전의 방법으로 결합관리제도를 제안했다.
서울형 결합관리제는 국토계획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지구단위계획 등 도시관리계획을 통해 문화유산 주변 지역처럼 용적 사용이 제한된 보전 필요 지역과 도심 등 개발이 필요한 지역을 결합·관리하는 개념이다. 류 대표에 따르면 서울의 대표 문화유산 지역인 송파구 풍납토성 3권역을 대상으로 결합관리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개발 가능한 용적률 200%를 150%로 낮출 경우 연면적 약 9만㎡를 양도할 수 있다. 이를 인근 3곳에 나눠줄 경우 사업지별로 용적률이 최대 126% 증가하고 연면적은 최대 1만㎡ 늘었다. 풍납토성 3권역은 적정 밀도를 유지하며 환경 개선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인근 지역은 사업성을 키우고 역세권 기능을 강화할 수 있어 윈윈인 셈이다.
류 대표는 “결합관리형 지구단위계획을 신설해 후보지 선정, 용적 교환 비율 등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실행 절차와 공시 방안 등을 만들면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며 “서울시가 결합관리제도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다면 좀 더 실행력 있게 추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결합관리제를 양도지역(파는 쪽)과 양수지역(사는 쪽) 간 용적률을 매매하는 결합건축을 지구단위계획 수준으로 확장한 형태로 보고 있다. 결합관리제를 개발 억제 지역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완적 수단으로 적극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장 권한으로 당장 실행 가능한 지구단위계획과 조례를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로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국토계획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결합관리제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후보 지역 선정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경주 등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지현 한국도시계획기술사협회 부회장은 “결합관리제 취지에 공감한다”며 “ 어느 지역을 우선 선정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결합관리제도가 운영되려면 양수·양도지역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해당 지역 선정이 적절한지에 대한 검증 과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구단위계획으로 사회적 합의를 담보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문화유산의 가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공유와 존중은 도시계획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김충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풍납토성 일대처럼 문화유산 지역에 결합관리제를 적용할 때 이 유산이 어떠한 가치가 있으며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 등 가치 중심적인 접근이 이뤄진다면 특수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도시적으로도 좋은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지엽 성균관대 교수는 “용적 이전은 1970년대 말부터 논의가 있었고 4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법·권리 문제로 무겁게 접근하지 말고 용적률 관리 차원에서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현재 미국이나 일본처럼 공중권(토지의 상부인 ‘하늘 공간’도 재산권처럼 거래할 수 있다는 개념)이 없고 한국은 지상권(토지 위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권리)이 있어 접근 방식이 다르다 보니 권리 분리나 거래로 보면 법적 저항이 크고 복잡해진다. 따라서 지구단위계획 차원에서 법정 용적률 상한 이내에서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용적률을 낮춘 지역의 손실을 다른 지역에서 늘어난 용적률로 보상하는 방식으로 실행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권영상 서울대 교수도 서울시가 법 개정이 아니라 지구단위계획으로 풀어보겠다는 접근에 대해 현실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양도·양수지역의 선정 기준을 비롯해 보상 체계, 지역 간 불균형 방지 장치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단기적으로 지구단위계획 차원에서 시도하더라고 장기적으로 법 개정을 비롯해 폭넓은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적률 이전이 용도지역제를 흔드는 방식으로 작동할 경우 도시계획과 재산권의 틀을 흔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훈 중원대 교수는 “용도지역제는 도시계획의 근간이며 용도지역제로 지정된 토지의 용도와 가치는 재산세 부과 등 세수의 근본”이라며 용적률 이전은 법적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서울시가 용적률 이전을 추진할 경우 경주 등 다룬 문화재 보호 지역 간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만의 특수 해법으로 추진하기보다 국토계획법 체계 안에서 전국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용적률 이전을 활용한 인근 지역 고밀도 개발은 미국과 일본에선 성공 사례가 많다. 문화재급 건축물인 도쿄역의 미사용 용적률 700%를 주변 지역에 이전해 초고층 빌딩들을 개발한 일본 마루노우치가 대표적이다. 도쿄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용적률 이전을 활용한 개발을 허용한 특정 지구는 64곳에 달한다.
용적률 이전은 일반 건축물에도 적용될 만큼 보편화되고 있다. 시부야역 인근 한 초등학교가 미사용 용적률 91%를 바로 옆에 있는 재건축 추진 맨션에 100억엔(약 950억원)에 넘겨 신축 비용을 마련하고 맨션은 기존 14층에서 34층 건물로 재탄생하게 돼 화제가 됐다.
유나경 PMA엔지니어링 대표는 “도시의 과거를 지우는 개발은 도시의 정체성을 상실시키고, 개발을 거부하는 보존은 도시의 생명력을 약화한다”며 “새로운 도시 관리 패러다임으로 보존을 넘어 활용과 상생을 지향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