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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솟은 흉물이다”...타워크레인까지 그대로 방치된 건설현장

전국 보증사고 사업장 16곳 HUG 공매마저 줄줄이 유찰

  • 박재영
  • 기사입력:2025.06.26 08:03:20
  • 최종수정:2025.06.26 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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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보증사고 사업장 16곳
HUG 공매마저 줄줄이 유찰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중앙동 ‘유은센텀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중앙동 ‘유은센텀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이달 중순께 찾아간 전북 익산시 중앙동 ‘유은센텀시티’ 아파트 건설 현장은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있었다. 누렇게 변색된 콘크리트 위로 철근이 드러났고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은 2년 가까이 움직이지 않은 채 도시의 하늘을 막고 있었다. 2021년 4월 착공한 이 민간 임대아파트는 2023년 10월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27층 136가구 규모로 설계됐지만 지금까지 올라간 층수는 5층도 채 되지 않는다.

도보 10분 거리의 익산시 남중동 ‘라포엠 더 시티’는 민간 장기 전세아파트로 지난해 6월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시공사가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며 공사가 중단됐다. 이곳 현장 역시 뼈대만 남은 채 저층부를 건설하던 중 공사가 멈췄다. 현장을 둘러싼 철제 펜스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안내문이 여러 군데 붙어 있었다.

하청업체 대금 지급이 밀리며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남중동 ‘라포엠 더 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하청업체 대금 지급이 밀리며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남중동 ‘라포엠 더 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두 건설 현장 모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사고로 회수한 곳이다. HUG의 보증보험에 가입한 시공사가 경영 악화로 공사를 마치지 못하는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HUG는 다른 시공사를 찾거나 수분양자들에게 계약금·중도금을 돌려준 뒤 사업장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한다.

HUG는 이들 단지를 포함해 올해 총 11곳의 보증사고 사업장을 공매시장에 부쳤지만 단 한 곳만이 낙찰됐다. 낙찰된 곳은 대구 북구 복현동의 ‘골든프라자’로, 착공 35년 만에 공매시장에 나온 이 건물·토지는 11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절반 수준인 143억원에 겨우 새 주인을 찾았다. 올해 HUG 공매 사업장 중 첫 번째 낙찰 사례다.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중앙동 ‘유은센텀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시행사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전북 익산시 중앙동 ‘유은센텀시티’ 아파트 건설현장. [박재영 기자]

하지만 이마저도 예외적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나머지 공매 대상 사업장들은 여전히 수차례 유찰 중이며 매각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실제로 HUG가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보증사고 사업장은 16곳에 달하며 지역 중소 건설사의 연쇄 도산으로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들어 신동아건설을 비롯해 삼부토건과 대우조선해양건설, 벽산엔지니어링, 대흥건설, 최근에는 영무토건까지 시공능력평가 200위 내 중견 건설사 11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분양보증사고 사업장은 2021~2022년엔 한 곳도 없었지만 2023년 16곳, 2024년 17곳으로 증가했다.

정부도 최근 지방 건설경기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준공 전 미분양 주택 1만가구를 ‘환매조건부’로 선매입할 예정이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부동산 경기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이 제도를 운영했는데 1만8933가구를 사들여 6가구만 남기고 모두 환매하는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매입 대상은 공정률 50% 이상인 지방의 준공 전 미분양 아파트로, 매입 가격은 분양가의 50%다. 건설사는 준공 후 1년 내로 HUG에 분양가의 50%와 이자 등 최소 실비용을 내면 해당 아파트 소유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지방의 수요가 말라버린 상황인 만큼 제도 실효성에 물음표를 던졌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비수도권 등 주택 수요가 없는 지역에서는 ‘반값 분양가격’이 건설사의 자구책이 되는 대신 가격만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낸다”며 “이런 찔끔 수혈보다는 지방 소비자들의 수요를 진작시킬 규제완화가 더 절실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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