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권한대행 총리직을 내려놓으며 '루비콘강'을 건넜다. 40여 년을 행정 관료로만 일해온 그가 76세 고령에 처음으로 정치에 도전하겠다는 깜짝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은 데 반해 풀어나가야 하는 일은 많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다. 당장 다음주까지 '빅텐트' 구성을 마친 뒤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 그를 재촉하고 있다. '정치 신인' 한 권한대행의 역량은 예행연습 없이 곧바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사임의 변을 담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미국발 글로벌 통상위기와 극단화된 한국 정치의 위기를 언급하며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권한대행은 "세계 10위권의 한국 경제가 주요 7개국(G7) 수준으로 탄탄하게 뻗어나갈지 아니면 지금 수준에 머무르다 뒤처지게 될지, 대한민국 정치가 협치의 길로 나아갈지 극단의 정치에 함몰될지, 두 가지가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제의 최일선에서 제가 배운 것은 국가가 앞으로 나아갈 때 국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이라며 "대한민국은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온 나라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양쪽으로 등 돌린 진영의 수렁에 빠져 벌써 수년째 그 어떤 합리적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한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저 한 사람이 잘되고 못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는 확실해야 한다"며 "앞으로 나아가며 계속해서 번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한 권한대행은 1970년 공직에 입직한 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직접 목격한 산증인"이라며 "그런 분이기에 최근의 정치·경제 위기가 본인까지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 선언문에는 국회의 총리 추천제를 포함한 대연정 제안, 3년 임기를 전제로 한 분권형 개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사과와 반성 등 내용이 담길 것이 유력하다.

이 전 총리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하고나 손을 잡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한 권한대행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면 힘을 합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총리와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 등은 당명 변경, 윤 전 대통령 탈당 등 국민의힘에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의힘 경선 후보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은 '갑질'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조율이 어려워 보인다. 이 후보도 "묻지 마 단일화에 응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 권한대행 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선 홍보물 인쇄 발주 마감일인 오는 7일까지 국민의힘 측과 단일화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경선 주자들이 일제히 '빅텐트 주도권'은 당 대선 후보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 같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생겼다.
김 전 장관은 1일 김태흠 충남지사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충남도청에서 기자들에게 '한 권한대행이 출마하는데 일각에선 김 전 장관이 불쏘시개라는 말이 있다'는 질문에 "불쏘시개가 이렇게 충남까지 와서 지사님을 만나겠나"라고 반문했다. 한 전 대표도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제가 승리한 이후 어떤 정치 세력이든 누구와도 힘을 합칠 것"이라면서도 "저를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교적 단일화에 긍정적이었던 김문수 캠프 내부에서도 분열이 감지되며 한 권한대행을 범보수 진영의 단일 후보로 추대하려던 친윤석열계 움직임에 빨간불이 켜진 형국이다.
한편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8∼30일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응답률 19.3%)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범보수 진영에서 한 권한대행이 13%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한 전 대표는 9%, 김 전 장관은 6%를 기록했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안정훈 기자 / 진영화 기자 / 김명환 기자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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