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정부부처 예비비나 검찰·대통령실 특수활동비와는 별개로 지역 경제 활성화 예산을 늘리는 데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 대표가 자신의 고향이자 민주당의 '험지'인 대구·경북(TK) 지역을 찾은 것은 그가 최근 공을 들이는 민생·외연 확장 행보로도 풀이된다.
이날 이 대표는 안동에 있는 경북도청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만나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 지원과 대구·경북 통합 문제 등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이 대표는 이 지사가 내년도 경주 APEC 정상회의 지원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하자 "이건 우리가 전적으로 공감해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쓸데없이 특활비 등만 잔뜩 넣어놓으니 삭감안이 통과됐지만 정부에서 수정안을 내서 저희랑 협의하면 된다"며 여지를 뒀다.
이 지사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 2일까지인데 감액해서 이미 끝난 줄 알았다"고 말하자 이 대표는 "정말로 진지한 협상이 가능하면 길이 있을 것"이라면서 재차 여야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이 지사와 만난 자리에서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해서는 소단위 경제가 살 수 있게 지역화폐를 통해 재정 지출을 늘려주고 지역 골목상권이 순환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지역화폐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지역화폐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대구·경북 행정 통합에 대한 야당 협조가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 지사에게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서 고향 경북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줘서 고맙다"면서 경북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협력과 지원을 약속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은 이 대표와 이 지사의 면담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제 (정부 등에서) 수정안을 내면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며 이 대표의 '예산 증액' 관련 발언을 부연 설명했다. 이 실장은 "아마도 박찬대 원내대표의 입장은 감액에 관해 이의가 있는 부분은 추경안을 편성하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민주당의 지역화폐 예산에 관해 "정부 동의가 있어야 증액할 수 있지 않냐"며 "정부가 수정안을 내면 (지역화폐 예산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APEC 예산 협의가 가능하다면 지역화폐 국가 예산 지원도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날 이 지사와 간담회를 마치고 오후에 경북 포항으로 이동했다. 그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상인연합회와 간담회를 하고 지역화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등 민생 일정을 소화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개최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25일 위증교사 사건 등 연내 예정된 1심 선고가 마무리되자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 지역으로 달려가 외연 넓히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그는 오는 8일에는 전남 나주에서 쌀값 안정화를 위한 농민 간담회를 진행한 뒤 9일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를 연다.
[안동·포항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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