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서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은행원의 기지를 칭찬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자극적인 내용이 없는데도 기사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 사람의 성실함이 누군가를 구하는 순간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계장 A씨가 고객의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친 게 아니다. 그저 은행에서 수년간 근무하는 동안 몸에 쌓인 '암묵지'를 발휘해 고객의 이상행동을 알아챘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업무 밖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은행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고객을 사기범의 손에서 벗어나게 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이 너무 악하다고 느낀다. 순수한 사람을 등쳐 먹는 범죄자가 떵떵거리며 잘산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러다 세상의 불공정함에 치를 떨어봤자 바뀌는 게 없다고 체념하기도 한다. 마스크를 쓴 각종 히어로가 21세기에도 꾸준히 호응을 얻는 원인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초능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무기력감의 방증이다.
그러나 A씨의 사례는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꼭 초능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이다. 막강한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직업윤리를 지키며 제 할 일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관찰력을 가지고 한 번 더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 각자의 성실함이 사회 곳곳을 비출 때, 악은 더 이상 자기 자리가 없다고 무기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박창영 금융부 hanyeahwe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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