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지금부터 '천재 과학자들의 뇌' 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은 다 버리고 시각, 후각, 촉각, 미각 같은 감각기관도 잠시 잊으세요.
오로지 뇌만 있는 세상을 떠올려보세요.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 상상도 못했던 현실이 펼쳐집니다. 두 과학자는 말합니다.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면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요. 이 기사를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게 되겠죠. "지금 나를 둘러싼 현실이 정말 현실인가? 내가 진짜 나인지, 실험실 속의 뇌일 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영화 '인셉션'이나 '아바타' '매트릭스'는 물론 장자의 '호접지몽'과 김만중의 '구운몽'까지 다시 보게 될 겁니다. 후배 과학자들의 담대한 도전을 기대합니다.

철학계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통 속의 뇌'와 같은 개념입니다. 백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을 전기 신호로 바꿔 뉴런을 통해 전달한다. 만약 전기 신호를 인위적으로 보낼 수 있다면, 뇌는 현실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 교수가 '뇌내현실'이라는 개념을 가장 처음 떠올리고 제안한 이유입니다. 이 교수는 "요즘에야 AI가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이야기 아닌가"라며 "AI 열풍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뇌내현실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2021년 삼성호암상 의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고, 동료 과학자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석학의 말이니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지요.
눈이나 귀, 코와 손 등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자극은 전기 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됩니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을 인식하고 전기 신호로 바꾸죠. 세상에는 적외선부터 자외선까지 넓은 파장대의 빛이 있지만, 우리는 가시광선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자연의 극히 일부만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본 것이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른 것을 본 것처럼 자극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가시광선 외의 파장대 정보를 뇌에 입력할 수 있다면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시신경이 뇌의 어느 부위와 연결돼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무언가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도 수차례 실험으로 검증됐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정보량을 어떻게 소화할까요? 뇌가 과부하에 걸리지는 않을까요? 백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문제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감각기관을 거쳐 뇌로 올수록 정보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컴퓨터 파일을 압축하는 것처럼 우리 신경 회로도 불필요한 정보들을 없애고 대상의 본질을 담고 있는 정보만 압축시킨다니 신기하지요. 뇌에 가까워질수록 정보는 압축과 추상화를 반복해 엑기스만 남깁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헬리콥터 조작법을 3초 만에 배우는 것(사실은 다운로드)처럼, 책을 읽지 않고도 방대한 지식을 순식간에 학습할 수 있죠. 물론 기술적으로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이 교수는 미리 상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실의 개념을 바꾼다는 철학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뇌내현실 기술은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겁니다. 이 교수는 특히 "뇌내현실은 장애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에서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사지 마비 환자의 뇌를 바로 로봇 팔다리에 연결해서 조작할 수 있고, 시각이나 청각 장애인의 기능을 되찾아줄 수도 있죠.

인간의 모든 가치판단, 심미적 경험, 고통이나 쾌락 같은 기준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우울할 때마다 버튼 하나로 다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인간에게 우울감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부정적 경험과 감정은 사라진 채 긍정적인 것들만 남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교수가 뇌내현실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던진 질문입니다.
여기서 인문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이 교수는 "뇌내현실 기술은 언젠가는 나올 것이고, 많은 걸 바꾸고 사회적 논란도 불거질 것"이라면서 "기술 모라토리엄(기술 개발을 중단하자는 합의)은 의미 없고 불가능하다. 그래서 윤리를 담당하는 인문학자들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AI 윤리 논란과 꼭 닮아 있죠.
물론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아직 먼 이야기들입니다. 백 교수는 "특히 뇌에 삽입할 전극 문제의 난도가 가장 높다"고 했습니다. 뇌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려면 전극을 삽입해야 하는데, 염증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전기 신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서이지요. 현재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에서 전극을 연구하고 있으나, 최대 6개월 정도밖에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 그런데 이들은 왜 뇌내현실을 이야기할까요? 우리는 뇌로 세상을 이해하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백 교수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눈앞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결국 과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겁니다. 약간은 철학적인 문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재미있잖아요."
전기자극으로 장애 극복 도전…뉴럴링크 실험
'인간 뇌에 칩을 삽입해 슈퍼 인간을 만들자.' 일론 머스크는 이를 목표로 삼아 2016년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현실성 없는 공상처럼 느껴졌지만, 이 회사는 필요한 기술들을 직접 개발해 가며 선봉에 섰다. 지금은 12억달러(약 1조6000억원) 이상 투자를 받고, 기업 가치도 90억달러(약 12조5000억원)를 넘어섰다. 뉴럴링크는 사람 뇌에 직접 칩을 삽입하는 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침습적 방식은 정확하지만 아직 안전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름만 봐도 같은 뉴런 활성화…핼리 베리 실험
사람에게 영화배우 핼리 베리 사진을 보여주고 뉴런의 전기 신호를 측정한다. 이후에는 단순화된 베리의 그림, 특징만을 묘사한 캐리커처, 심지어 베리의 이름만 보여줘도 똑같은 뉴런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정보 중에서 뇌리에 남는 건 압축된 핵심 정보 일부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뇌내현실 기술이 뇌에 데이터를 입력할 때 데이터 용량 자체는 크지 않기 때문에 과부하 걱정은 없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사용자의 오감을 자극해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술. 뇌 바깥에 위치한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여 뇌로 전달하는 방식.
뇌내현실(Intracranial Reality)
감각기관을 거치지 않고 뇌 내부와 직접적으로 접촉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현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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