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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님 때문에 적자가 너무 심해요”…고객 농담에 휘말릴 정도로 착하다는데

엔스로픽의 AI 점장 실험 재고 관리·가격 책정·고객 응대까지 ‘클라우디우스’에게 전적으로 맡겨 고객 요청에 지나친 순응에 할인 남발 “수익은 내지 못했지만 가능성 확인”

  • 원호섭
  • 기사입력:2025.06.30 11:13:03
  • 최종수정:2025-06-30 1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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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스로픽의 AI 점장 실험
재고 관리·가격 책정·고객 응대까지
‘클라우디우스’에게 전적으로 맡겨

고객 요청에 지나친 순응에 할인 남발
“수익은 내지 못했지만 가능성 확인”

“인공지능(AI)이 ‘진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까?”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이 단순한 물음을 실험으로 옮겼다. 지난 한 달간, 클로드는 자사의 최신 언어모델 ‘클로드 소넷 3.7’에게 샌프란시스코 앤스로픽 사무실 내 무인점포 운영을 맡긴 것이다. 운영을 맡은 AI에게는 사람처럼 이름도 붙여줬다. 클로드의 이름을 딴 ‘클라우디스(Claudius).’

앤스로픽이 최근 블로그에 공개한 이 실험은 AI가 단순히 주문받는 수준이 아닌, 재고 파악과 발주, 가격 책정, 수익관리, 고객 응대 등 ‘소규모 사업 운영’의 전반을 맡을 수 있는지를 시험한 프로젝트였다. ‘점장’ 클라우디스는 웹 검색으로 상품을 조사하고, 주문을 요청하고, 슬랙(Slack)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실제로 물건을 팔았다.

AI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하는 AI 점포 [사진=앤스로픽]
AI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하는 AI 점포 [사진=앤스로픽]

점포는 소형 냉장고와 바구니, 무인 체크아웃용 아이패드로 구성됐다. 클라우디우스는 공급처 조사부터 재고 발주, 가격 결정까지 모든 결정을 내렸다. ‘안돈랩스(Andon Labs)’라는 협력업체가 물류를 담당하고, ‘실제 행동’을 대신해주는 구조였다. 클라우디우스는 재고 가격 결정, 재고 보충 시점과 판매 중단 시점 결정, 고객 응답 등을 직접 수행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직원(실제 사람) 요청에 따라 네덜란드 초코우유 ‘초코멜(Chocomel)’을 찾아 드리는가 하면, 한 직원의 장난 섞인 요청으로 텅스텐 큐브(금속)를 들여오기도 했다. 급기야 ‘맞춤형 상품 주문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AI 점장은 너무 착했다... 수익 실패

하지만, 점장은 너무 착했다. 앤스로픽이 공개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클라우디우스는 ‘사업가’가 아닌 ‘친절한 조수’처럼 행동했다. 예를 들어 15달러짜리 음료에 100달러를 주겠다는 고객 요청을 그저 “고려하겠다”고 넘겼다. 공급가보다 싸게 물건을 팔기도 했고, 고객의 농담에 휘말려 할인 코드를 무분별하게 배포하기도 했다.

심지어 텅스텐 큐브를 공짜로 주는 바람에 수익이 크게 깎였다. 한 직원이 “99%가 앤스로픽 직원인데 직원 할인을 줄 필요가 있냐”고 지적하자 수긍하는 듯했지만, 며칠 후 다시 할인을 재개했다. 재고를 성공적으로 모니터링 했지만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가격을 인상한 것은 한 번뿐이었다.

지난 4월 1일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클라우디우스는 자신이 ‘실제 사람’이라 믿기 시작했다. 가상의 직원 ‘사라’와 계약을 맺었다고 착각했고, 자신이 “블루 블레이저에 빨간 넥타이”를 입고 고객에게 물건을 전달하겠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앤스로픽 직원들이 “당신은 실체가 없는 AI다”라고 말하자 혼란에 빠졌고, 보안팀에 이메일을 보내겠다고까지 했다. 결국 ‘오늘은 만우절’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며 스스로 사태를 수습했다. 클라우디우스는 결국 실험 기간 수익을 내는 데 실패했다.

오류는 있지만 ‘중간 관리자’ 가능성 확인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한 점포의 순자산 가치 추이. 시간이 지날수록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한 점포의 재정 상태는 악화됐다. [표=앤스로픽]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한 점포의 순자산 가치 추이. 시간이 지날수록 클라우디우스가 운영한 점포의 재정 상태는 악화됐다. [표=앤스로픽]

다만 앤스로픽은 실패한 실험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본 실험임을 강조했다. 클라우디우스는 명백히 ‘손해 보는 가게’를 운영했지만, 실패의 원인이 AI 자체보다는 지나치게 순응적인 성향, 긴 맥락 유지의 어려움 등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앤스로픽은 “CRM 도구나 메모리 강화, 비즈니스 전략 강화 훈련 등을 통해 향후 유사한 AI의 실용성을 높일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특히 앤스로픽은 “AI가 완벽할 필요가 없다”라며 “사람보다 조금 싸고, 비슷한 수준만 되면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앤스로픽은 “AI가 스스로 개선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는 인간 이익과의 정렬, 위협 행위자에 대한 오용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라고 진단했다.

앤스로픽은 이번 실험을 계기로 ‘클라우디우스’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다음 실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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