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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까진 허용하고 중증은 막는다”...한국 바꿀 신종 바이러스 백신 기술은?

한국을 바꿀 10개의 질문 신종 바이러스 백신 미리 만들 수 있을까 감염 예방이 먼저라는 인식 범용백신 만드는 데 걸림돌 백신 목표 과감한 전환 필요 항체·T세포는 보완재 관계 두개의 방식 효율적 결합땐 백신 개발 탄력 받을 수 있어

  • 김지희
  • 기사입력:2025.06.25 22:26:33
  • 최종수정:2025.06.25 22: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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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바꿀 10개의 질문
신종 바이러스 백신 미리 만들 수 있을까

감염 예방이 먼저라는 인식
범용백신 만드는 데 걸림돌
백신 목표 과감한 전환 필요

항체·T세포는 보완재 관계
두개의 방식 효율적 결합땐
백신 개발 탄력 받을 수 있어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전 세계 보건당국은 1년 내내 ‘100일 작전’ 대기 중이다. 어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100일 이내에 대응할 수 있는 예방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100일 전략은 세계를 몇 년이나 멈춰 세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작된 ‘백신 초고속 개발 프로젝트’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100일 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대한민국이 여기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 국내 유행 후 100일이 되기 전에 이미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결국 특정 변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코로나 또는 모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포괄하는 ‘범용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언제든 또 다른 팬데믹이 올 수 있다는 건 상식이 됐다. 당장 올해만 해도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중국에서는 지난 3월 5만6286명이던 코로나 환자가 5월에는 44만명을 넘어섰고, 홍콩과 대만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주차별 환자 수는 100명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올여름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의철 KAIST 교수
신의철 KAIST 교수

최근 대전 유성구 KAIST 문지캠퍼스에서 만난 신 교수는 조류 인플루엔자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해 WHO는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람의 치사율이 52%에 달한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23개국에서 889건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5N1) 감염 사례가 나왔고, 이 중 절반이 넘는 463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WHO는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를 찾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 ‘사람 간 전염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50%가 넘는 치명률에 전파력까지 더해진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신 교수는 “만약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들 사이에 높은 전파력까지 갖게 된다면 극도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러한 바이러스가 변이를 통해 인간에게도 전염돼 언제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감염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금류 농장에서 조류와 직접 접촉한 이들이 감염됐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감염 경로가 확장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에서는 목장 젖소들에서 이미 조류 인플루엔자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신 교수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인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사진설명

통상 우리가 맞는 백신은 몸속에서 ‘항체 형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하는 과정을 차단한다. 인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려면 인체로 들어온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입해야 하는데, 바이러스가 그 자체로 세포에 침입할 수는 없다.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인간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해야 세포 침입이 가능하다. 백신을 맞아 만들어진 항체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미리 붙어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준다.

가장 최근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유발한 코로나19(SARS-CoV-2) 백신도 이 같은 방식으로 감염 예방 효과를 냈다. ACE2 수용체와 결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특정 부위인 RBD에 대한 항체를 형성하는 식이다. 문제는 바로 이 RBD 부위에 돌연변이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팬데믹 당시 ‘변이 발생으로 백신 효과가 줄었다’는 전문가들의 말은 이런 상황을 뜻했다. 코로나뿐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신 교수는 “현재 백신 전략은 바로 변이에 대응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범용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범용 백신 전략을 위해서는 기존의 항체 중심 백신이 아닌 T세포 면역을 기반으로 한 백신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며 “정상 세포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일종의 바이러스 ‘생산공장’이 되는데 감염된 세포를 빠르게 제거해 바이러스가 더 번지는 것을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 픽사베이]
[사진 = 픽사베이]

실제 신 교수는 지난 팬데믹 당시 접종한 코로나19 백신이 항체뿐 아니라 T세포 반응을 유도해 중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2년 국내에서는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한 백신을 접종했으나 당시에는 이미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 중이었다. 변이주의 발생으로 항체 면역은 효과가 떨어졌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T세포 반응을 쉽게 회피하지 못해 감염자들이 중증으로 진행되는 사태를 막아냈다. 신 교수는 “범용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항체 면역보다는 T세포 면역을 표적으로 한 백신 개발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T세포 기반의 백신이 적극 활용되기 위해서는 백신의 사회적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세포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만큼 감염 자체를 ‘예방’하는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반면 T세포는 감염을 막지는 못하되 바이러스 감염병이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은 억제할 수 있다.

지금은 백신이 곧 ‘감염되지 않는다’와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항체 백신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교수는 “항체가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130년이 넘었지만 T세포는 50년에 불과하다”며 “무엇보다 백신에 대한 정부와 허가기관, 대중의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감염 예방’에서 ‘중증질환 발생 예방’으로 백신의 목표를 낮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백신의 목표를 다르게 설정하면 ‘범용 백신’이라는 난제는 난제가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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