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중국의 달라진 행보가 주목을 받았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생물보안법 여파로 지난해 바이오USA에 대거 불참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는 미·중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도 중국의 23개 기업이 참여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작은 규모였지만 복귀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한국 바이오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중국을 꼽으며 "중국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고 기술에 대한 문제도 거의 사라져 현재의 바이오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위가 낮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바이오USA 개막 전날 진행된 세계바이오협회위원회(ICBA) 회의에서도 중국 시장과 관련해 정치와 산업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역시 "중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라며 "정치 상황과는 별개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약진에 한국 기업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들이 전시장 중심부에 대규모 단독부스를 열어 자체 경쟁력을 소개하거나 신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등 글로벌 입지 확장에 나섰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마련한 전시장은 비즈니스 미팅으로 꾸준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행사장 입구 바로 앞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위치에 167㎡ 규모의 대형 부스를 마련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부스 면적의 절반 이상을 비즈니스 미팅룸으로 꾸렸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영업지원담당 부사장은 "부스에는 회의를 할 수 있는 미팅룸 4개와 60석 정도의 별도 좌석을 준비했다"며 "효율적인 상담을 위해 미팅에 최적화해 부스를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첫 단독 부스로 바이오USA에 나선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세노바메이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뇌전증 환자가 세노바메이트를 복용한 후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내용을 담은 현지 TV광고도 재생됐다. 행사 기간 1000여 명이 넘는 기업 관계자들이 방문해 세노바메이트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높은 주목도를 실감케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무진과 함께 현지를 찾아 직접 파트너십 미팅을 진행했다. 최 본부장은 "그간의 인사이트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올해는 보다 구체적인 협력 기회를 도모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SK바이오팜은 현재 '제2의 세노바메이트'를 위한 기술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현지에서 진행한 간담회에서 "미국에서 의약품을 직접 판매하는 국내 기업은 매우 드물다"면서 "지난 6년간 엑스코프리를 통해 구축한 세일즈 플랫폼에 두 번째 제품을 얹으면 비용은 그대로인 반면 매출 증가 효과는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역시 직접 보스턴을 찾아 그룹의 바이오 사업에 힘을 실었다. 신 실장은 행사 첫날부터 주요 미팅에 나선 데 이어 동아쏘시오그룹, 셀트리온, SK팜테코 등 국내 기업과 싸이티바, 써모피셔 등 해외 기업 부스를 1시간 가까이 직접 살폈다. 동아쏘시오그룹 부스에서는 성무제 에스티팜 사장과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체-올리고접합체(AOC) 등 신규 모달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번 행사를 통해 미국 뉴욕 시러큐스 바이오캠퍼스에서의 수주가 2027년 가동 예정인 인천 송도 메가플랜트로 이어지도록 연계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박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이번 행사에서 영국 바이오기업 오티모 파마(OTTIMO Pharma)와 항체의약품 위탁 생산 계약 체결 소식을 전하며 "현재 ADC 관련 위탁생산 논의가 다수 진행 중"이라며 "일단 시러큐스 캠퍼스를 중심으로 수주 활동을 하고 있지만 향후 물량이 더 확대되면 송도 공장으로 물량이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자신했다.
한국바이오협회와 코트라(KOTRA)가 공동 운영한 한국관은 올해 전시장 중심부에서 관람객들을 맞았다. 참가기업 수도 51곳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참가 기업들은 위탁생산, 임상 서비스, 소부장, 신약개발 등 바이오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및 파이프라인을 소개했다. 행사 기간 450여 건의 상담도 진행됐다. 존 크롤리 미국바이오협회 회장도 한국관을 찾아 양국 바이오협회 간 견고한 파트너십을 드러내기도 했다.
협회와 코트라, 한국거래소 등이 공동 개최한 '코리아 바이오텍 파트너십' 행사에는 글로벌 제약사, 벤처캐피털(VC), 투자은행(IB) 등 국내외 주요 관계자 약 700명이 참가했다. 전체 참가자 절반 이상이 해외 참가자로 글로벌 네트워킹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승규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에 파이프라인을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라며 "다만 중국은 물론 인도, 태국 등 후발주자들의 공세가 거센 만큼 한국이 누릴 수 있는 3~5년의 골든타임 내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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