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은 세계 최대 고급 와인 생산지인 청정지역이지만, 독일 슈바베가 의약품 제조용 은행나무 농장을 직접 운영·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확된 은행잎을 원료로 슈바베사만의 특허 공법을 통해 혈액순환 및 치매 증상을 개선하는 EGb 761®이 만들어진다. EGb 761®은 80년 전통의 제약명가 유유제약(1941년 창립·대표 유원상)이 32년 전부터 '타나민'이라는 제품명으로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달 초 슈바베 보르도 은행엽 농장을 방문한 기자를 맞은 볼프강 베버 박사는 "최상의 품질을 가진 은행엽 추출물 확보를 위해선 어디서 은행나무를 재배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도 유명한 이곳 보르도는 연평균 기온이 10~20도로 온난하고 일조시간이 연간 1200~1500시간에 달한다. 이 때문에 최상급 포도뿐만 아니라 은행나무 재배에도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했다. 볼프강 박사는 글로벌 인허가 규제를 담당하고 있다.
슈바베는 1866년 설립된 천연물의약품 개발 전문회사다. 의약품 원료는 제공 업체가 다르면 기후와 토양에 따라 원료 품질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든 공정을 맡고 있다. 보르도 농장은 드론을 띄워 은행엽 온도를 수시로 체크하고 수확 시기를 결정한다. 축구장 300개 크기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잎 상태를 사람이 한 번에 확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농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고작 12명. 크기를 감안하면 많지 않다. 근무인력을 유연하게 투입하고 기후 상황에 따른 현장 관리가 이뤄진다. 일손이 바쁜 수확기에는 파트타임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한다.
볼프강 박사는 "최적의 은행엽 성분을 추출해 의약품 제조에 사용하기 위해 6년마다 은행나무를 20~30㎝로 낮게 자르는 '가지치기'를 실시한다"며 "그 이유는 어린 은행나무의 잎이 플라본글리코사이드, 테르펜락톤 등 의약품 활성 성분 함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나무가 성체로 자라면 활성 성분의 함량이 자연적으로 감소한다. 따라서 은행나무의 약리적 가치를 최상급으로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조절하는 가지치기를 진행하는 것이다. 기자가 "은행나무가 젊고 싱싱하네요"라고 칭찬을 건네자 볼프강 박사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은행잎을 병 치료에 사용한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식, 기관지염, 피부질환 등 다양한 치료를 위해 민간요법으로 쓰였다. 1960년대 독일에서 은행엽 추출물을 활용한 약물이 개발되면서 특정 질환에 효과를 보이는 적응증을 가진 의약품으로 발전했다.
보르도 농장 현장에 동행한 김경원 유유제약 연구부소장은 "은행엽 성분은 항산화, 신경세포 보호, 혈소판 활성인자 억제, 베타아밀로이드 응집 감소 등의 작용기전을 나타낸다"며 "이를 토대로 혈액순환, 경도인지장애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보르도 농장에서 수확한 은행엽은 독일에 위치한 정제 공장으로 옮겨져 총 27가지 추출 공정을 거치며 슈바베가 개발·표준화한 은행엽 건조엑스 제제인 'EGb 761®'로 새롭게 탄생한다. EGb 761®은 'Extract of Ginkgo biloba 761'의 약자다. 우수한 성분 배합비를 위해 슈바베가 개발한 수많은 샘플 중 가장 뛰어난 761번째 샘플을 표준화해 붙여진 이름이다.
슈바베는 은행엽에 함유된 57종 성분에 대한 약리기전을 규명해 유해물질 26종을 제거하고 유효성분 31종만으로 표준화된 의약품 원료를 개발했다. EGb 761®은 치매성 증상(기억력 감퇴)을 수반하는 기질성 뇌기능 장애, 어지러움, 말초동맥 순환장애(간헐성 파행증), 혈관성 및 퇴행성 이명에 효과가 있다.
EGb 761®은 생산 배지부터 유효성분 지표들이 일정하고 약리활성 편차가 적다. 슈바베가 일정한 성분 지표 유지를 위해 은행나무 재배에 최적인 보르도를 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은행엽 제품은 국가별 규정에 따라 전문의약품 또는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EGb 761®을 치매적응증으로 의사가 처방할 수 있다. 이명 및 현기증, 인지장애와 같은 다른 적응증은 환자가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보르도(프랑스) 이재형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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