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건호 씨는 유년 시절 사고를 당해 왼손을 잃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 넘게 미관형 의수를 착용해온 그는 최근 인공지능(AI) 전자의수를 만난 이후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 활동들을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는 양손으로 요리도 한다. AI 전자의수를 착용하면 모든 손가락을 힘 조절까지 하면서 움직일 수 있어 계란과 같이 깨지기 쉬운 물체도 세심하게 다룰 수 있다. 이 씨에게 '온전한 손'이 되고 있는 이 제품은 정립의지보조기(이하 정립의지)가 국내 시장에 유통하고 있는 독일 오토복(Ottobock)의 최첨단 전자의수 '비바이오닉(Bebionic)'이다.
최근 서울 용산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이승욱 정립의지 대표는 "사람의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8개의 센서가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AI가 이를 학습해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전자의수가 움직이도록 설계됐다"며 "그동안 환자가 기계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환자의 패턴을 익혀 스스로 움직이는 수준까지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립의지는 1977년 설립된 국내 의료 보조기기 전문 기업이다. 의수·의족·보조기 등 3대 제품군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기를 환자 맞춤형으로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의수와 의족, 재활로봇 분야로 사업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대를 이어 50년 가깝게 의료 보조기기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며 "국내 보조기기 전문기업 중에선 드물게 글로벌 기술기업과의 협업체계와 재활 중심의 맞춤형 기기 공급 시스템을 갖춘 것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정립의지는 30곳 넘는 국내 유수의 재활의학 병원과 제휴를 맺고 의료 보조기기를 공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병원,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강북삼성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환자가 병원을 통해 의수나 의족 제작을 의뢰하면, 정립의지는 글로벌 제조 협력사와 제품을 설계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정립의지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회사들은 세계적인 기술기업들이다. 독일 헬스케어 기업 오토복, 아이슬란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의료 보조기기 전문 제조사 오서 등을 파트너사로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엔 서울아산병원 국제진료센터를 찾은 아랍에미리트(UAE) 출신 환자에게 오토복의 로봇 무릎 관절을 적용한 스마트 의족을 제작했다"며 "자연스러운 보행 자세를 취할 수 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등산까지 편하게 할 수 있게 기기 내부 정밀 부품들이 보행 패턴과 상황을 인식해 자세를 잡아줘 외국에서도 찾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현재 정립의지는 오토복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비바이오닉 전자의수, 지니움X4 MPK(전자무릎관절), 씨브레이스 KAFO(전자다리보조기) 등 최첨단 의료 보조기기를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기기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환자의 재활 과정 없이 '착용만'으로 일상 복귀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정립의지는 환자의 재활 과정에도 공들이고 있다. 이 대표는 "환자의 보행 습관 분석, 몸에 가장 최적화된 기기 설계, 기기가 몸에 잘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조정 작업과 맞춤형 재활 훈련 등을 아우르는 통합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보조기기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정작 고가의 전자보조기 대부분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다. 정부 지원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등급 일부에 한정돼 있다. 이 대표는 "모든 환우들이 자신에게 딱 맞는 의수, 의족, 보조기기를 가격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보건복지부, 민간 보험사, 대형 병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모색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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