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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경색 위험 높네요”...잠 못 이루는 응급의, AI가 보조 맡는다

‘의료AI’ 김중희 알피 대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뛰며 데이터 5만건 분석·AI 개발 심전도 검사지 폰으로 찍으면 AI가 10여개 위험질환 분석 전국 20개 중상급 병원 사용

  • 최원석
  • 기사입력:2025.05.06 23:09:08
  • 최종수정:2025.05.06 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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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AI’ 김중희 알피 대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뛰며
데이터 5만건 분석·AI 개발

심전도 검사지 폰으로 찍으면
AI가 10여개 위험질환 분석
전국 20개 중상급 병원 사용
사진설명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제각각이듯 심장 박동도 모두 다르다. 심전도 그래프에는 환자의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담긴다. 모눈종이에 그려져 있는 검은 실선에 환자가 심근경색 위험이 있는지, 빈맥이 있는지, 부정맥이 있는지 등 방대한 정보가 있다. 의사들은 그래프의 모양과 높이를 일일이 따져가며 환자를 살핀다.

심전도 검사는 국내에서만 매년 1700만건 이상 시행되는 기본 검사이지만, 심전도 그래프를 분석하는 건 숙련된 의사에게도 까다로운 일이다. 특히나 여러 환자를 동시에 진단해야 하는 응급의에게는 심전도를 꼼꼼히 분석할 시간이 부족하다. 밀려드는 환자로 바쁜 응급의들은 심전도가 모호하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측정하는데, 그사이 다른 환자가 밀려들고 더 바빠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중희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ECG 버디(Buddy)’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인공지능(AI) 솔루션이다. 의사들이 종이나 모니터 화면으로 보던 심전도 그래프를 ECG 버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촬영하면 AI가 자동으로 분석해준다. 10가지 이상 주요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를 숫자로 보여준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고, 현재 병원 20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ECG 버디를 사용한 의사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흉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심전도가 보기엔 문제가 없었는데 ECG 버디가 심근경색 위험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긴장하며 지켜봤는데 10분 뒤 심정지가 왔다”며 “ECG 버디가 아니었으면 놓칠 뻔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면 누구나 이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실에서만 13년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응급실이 낯설다고 했다. 체계적인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담당 환자를 오랜 기간 지켜보는 다른 과와 달리 응급의학과 의사는 갑자기 들이닥치는 환자를 돌봐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건, 환자 생명에 직결된 판단을 찰나에 내려야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부담과 책임을 안고 산다. 김 교수는 “내가 돌려보낸 환자가 집에서 사망할 확률이 얼마일지 매일 밤 고민했다”며 “혹시나 잘못 퇴원시켰다가 사망했을까 봐 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ECG 버디를 앱으로 만든 것 역시 응급의학과 의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선택이다. 심전도를 분석해주는 장치는 기존에도 있지만, 심전도 기기 자체에 탑재된 형식이다. 이걸 사용하려면 고가 장비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의사가 쓰기에는 어려웠다. 반면 ECG 버디는 스마트폰에 앱만 설치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의료 서비스의 핵심은 접근성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AI라도 필요할 때 옆에 없으면 소용없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나갔다가 수상한 이후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닐 수 있는 AI를 만들어내기 위해 김 교수는 3년간 심전도 데이터 5만건을 직접 레이블링했다. 응급실 밖에 있는 시간을 오롯이 시스템 개발에 쓴 것이다. 그렇게 2021년 7월 창업해 혼자 시작한 ‘알피’는 현재 직원 20명이 넘는 의료 AI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ECG 버디의 중요성은 최근 더욱 두드러진다. 의료 대란으로 응급 의료 현장이 더욱 바빠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원래도 취약했던 의료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응급의가 환자를 돌보는 여건은 훨씬 나빠졌다”고 말했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이후 응급처치를 받은 환자들이 입원하기가 어려워져 응급의가 주치의 역할까지 도맡게 됐다. 김 교수는 “ECG 버디가 응급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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