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상을 떠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향년 28세)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였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된 가운데 고소부터 고발까지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의혹이 심화되고 있으나 MBC는 “유족이 요청한다면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 외에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였다는 의혹은 지난 28일 매일신문 보도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9월 15일 오전,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를 작성한 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유서에는 선 입사 기상캐스터가 오보를 낸 뒤 고인에 뒤집어 씌우고, 또 다른 선 입사 기상캐스터는 틀린 정보에 대한 정정 요청을 하자 ‘후배가 감히 선배에게 지적한다’는 취지의 비난을 하는 등 특정 기상캐스터 2명에게 받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르쳐야 한다’며 퇴근 시간 이후 호출하거나 퇴근을 막고, 실력을 이유로 비난한 메시지와 음성 등도 다량 발견됐다. 고인이 사망 전 MBC 관계자 4명에 피해 사실을 알린 정황도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였다는 의혹이 알려지자 MBC 측은 이날 “고인과 관련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라 MBC로서는 대응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했거나, 신고가 아니더라도 책임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며 “MBC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프리랜서는 물론 출연진의 신고가 접수됐거나 상담 요청이 들어올 경우에도 지체없이 조사에 착수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고인이 사망 전 MBC 관계자 4명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저희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대한 무분별한 유포와 의혹 제기를 자제해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 고인의 명예와 직결돼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고인의 유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유족들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MBC는 최단 시간 안에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유족 측은 “MBC에 사실관계 요청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조사하고 진정 어린 사과 방송을 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것으로 보이는 직장 동료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정치권의 비판도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고인의 직장이었던 MBC의 태도는 실망스럽다”며 “고인의 죽음 이후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사나 조치가 없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비판을 MBC 흔들기라며 언론 탄압처럼 호도하는 것은 고인을 모독하고 유족에 상처를 주는 2차 가해”라며 “뉴스를 통해 수없이 직장 내 괴롭힘을 비판해 온 MBC가 스스로에 대해서는 진영논리로 책임을 회피한다면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해당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고발장도 접수됐다.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울특별시경찰청 서울마포경찰서와 고용노동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알리며 고발장 접수를 인증했다. 공개된 고발장에는 MBC와 부서 책임자, 가해자로 지목된 동료 기상캐스터 2명이 피고발인으로 명시되어있다. 작성자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억울함이 아닌,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하여 사용자의 ‘법적 책임’과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며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긴밀히 협력하여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고인과 관련한 보도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누리꾼들은 ‘가해자’ 찾기에 나섰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부 기상캐스터의 실명이 직장 내 괴롭힘 가해 주동자로 지목돼 나오고 있다. MBC의 기상 뉴스들을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 ‘오늘비와?’에는 이들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쏟아지고 있으나 댓글창도 막지 않고 있으며, 영상 역시 계속 올라오고 있다.
상황이 심화되고 있으나 MBC 측은 첫 입장문을 낸 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사안과 관련해 MBC와 관련자들에 고소, 고발이 들어간 만큼 조사를 통해 대응하려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관계 확인 등 자체 조사에 시간이 걸리는 것과 더불어 고인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명예가 직결되어 있는 엄중한 사안인 만큼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은 일견 타당한 행보로 보인다.
그러나 MBC 측 공식입장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한다는 점(근로기준법 76조의 3. 2항)과 해당 사안과 별개인 ‘MBC 흔들기’를 언급하며 동일시 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는 점 등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 누리꾼들은 “유족이 요청해야만 조사를 하는건가”, “관련해 사실관계 확인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유족들과 소통은 했나”, “즉시 조사해서 엄중 문책해야하는 것 아닌가”, “의혹이 있는 사람은 방송에서 배제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실망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입장문이...”, “차라리 조사 중이라고 해야했다”, “직원 보호에 관심이 없는 듯”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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