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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귀신 들리는 아랫집 여자 … 이상하게 무섭기보다 사랑스럽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 송경은
  • 기사입력:2025.08.15 16:03:10
  • 최종수정:2025.08.15 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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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한 장면. CJ ENM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의 한 장면. CJ ENM
귀신에 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주로 공포, 오컬트 영화들이다. 그런데 역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들어간 귀신이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자신을 악마라고 칭하는 귀신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공포스럽고 해괴한 기존 귀신의 이미지도 탈피했다. 오히려 귀엽고 발랄하며 심지어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귀신도 한때는 인간이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코미디와 미스터리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우리가 그동안 다른 영화를 통해 접해왔던 귀신들의 문법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한 맺힌 귀신에 씌어 새벽마다 악마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선지(임윤아), 그녀를 지키려는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와 윗집에 사는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던 '엑시트'(2019년)로 누적 관객 942만명이란 대박을 터뜨린 이상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이야기는 선지가 길구의 아랫집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것 같은 길구는 선지와 처음 마주친 뒤 첫눈에 반한다. 그런데 선지는 어딘가 좀 이상하다. 낮에는 다정하고 조신한 제빵사지만 새벽 시간만 되면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집을 박차고 나와 말썽을 부린다. 그 시간에는 선지의 아버지 장수도 선지에게 존댓말을 쓰며 머리를 조아린다. 며칠을 선지 주변에 맴돌다 장수에게 들통난 길구는 선지가 잠든 새벽에 선지 몸에 들어간 귀신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장수는 조카 아라(주현영)에게 부탁한 것처럼 길구에게도 선지를 보호해주길 부탁하면서도 선지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달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백수로 무기력하게 있던 길구는 장수의 제안으로 낮에는 선지가 일하는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는 악마 선지와 일상을 보내며 선지를 돌보게 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B급 코미디처럼 가볍게 흘러간다. 카메라는 낮 시간의 선지보다는 새벽 시간의 '악마 선지', 사실상 선지 안에 들어간 귀신을 비추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대는 악마 선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내놓으라며 호통을 치고, 한강 다리 위에서 극단적 시도를 하려는 중년 남성에게 "용기를 내! 금방이야!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라며 뛰어내리라고 소리친다. 못된 짓만 골라 하는 악마 선지는 "나는 악마 중에서도 상급 악마"라며 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딘가 어설프다.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선지의 모습 뒤에 숨은 어설픈 악마 선지의 개인적인 서사가 드러나면서부터 펼쳐진다. 영화 후반부는 귀신의 시선과 귀신의 감정에 몰입하도록 연출됐다. 그가 어떻게 한 맺힌 귀신이 됐는지, 어쩌다 선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선지 몸에 들어가게 됐는지, 함께 사는 선지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왜 그렇게까지 모질게 구는지 등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관객은 악마 선지에게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늘 자신을 소멸시키려는 정체 모를 퇴마사들에게 쫓기던 악마 선지는 귀신보다는 악마의 탈을 쓴 한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선지가 자라온 긴 세월 동안 악마 선지와도 함께 살아온 가족들의 모습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는 장면은 진정한 가족애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영화가 곳곳에서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고, 귀신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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