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행에서 비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비가 오면 일단 제약이 많아진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성가시다. 더러는 비가 좋다는 사람도 있다.

‘대체 왜’ 이해를 못 하다가도 이곳에 비오는 날 갔다가 나도 모르게 흠뻑 빠졌던 적이 있다. 바로 제주의 숲이다.

비가 내리면 오감이 더 열린다. 현무암 돌담, 나무 기둥. 이파리도 색이 더 선명해지고 흙냄새, 풀냄새도 짙어진다. 새 울음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저기압일 때 소리는 더 넓게 멀리 퍼진다. 모처럼 제주 여행을 떠났는데 비가 온다면 실망하지 말고 얼른 숲으로 가자. 제주의 숨결이 고요히 요동치는 것을 몸소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 ‘제주 1호 사립수목원’ 곶자왈에 심은 40년의 꿈

상효원은 제주 최초의 사립수목원으로 약 26만4400㎡(8만 평) 규모를 자랑한다. 서귀포시 상효동 해발 400m에 위치한 상효원은 한라산과 제주 바다를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제주 고유 자생식물들과 제주 토종식물 그리고 국가지정 희귀·특산식물 보존기관으로 12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꽃과 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상효원은 2014년에 개원, 올해로 11년 차를 맞이한 비교적 어린 수목원이지만 이곳을 채우고 있는 꽃과 나무는 그 역사가 더욱 깊다.

상효원을 운영하는 KC 코트렐 이달우 회장이 1986년 원래 부지였던 이곳을 매입하고 40년에 걸쳐 꽃과 식물을 키워 지금의 모습으로 꾸몄다.

메인 탐방로는 2㎞로 포장도로만 따라 관람하면 1시간, 전체 코스를 둘러보면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거동이 불편하다면 카트를 타고 수목원 주요 포인트를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도 추천한다.

이곳에는 제주 자생 나무인 담팔수와 구상나무 등 희귀종이 자라고 있는데, 담팔수는 잎 8장 중 한 장이 붉은색인 것이 특징이며, 제주에서만 자생한다.

“구상나무와 담팔수 등 일부 종은 온난화로 인해 30~40년 후에는 제주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어요.” 김동진 상효원 식물자원연구소 팀장이 말했다.

걷다 보니 보행로를 가로지르는 깊은 계곡이 등장했다. 곶자왈 내에는 자연적으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모양이었는데, 제주 내에서도 물이 흐르는 곶자왈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상효원에서는 350년 된 소나무와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나무가 자라는 연리근 소나무 등 희귀목도 볼 수 있었다. 계절별로 다양한 꽃을 심어 축제도 진행 중이다.

상효원은 제주 내에서 수국을 가장 늦게 그리고 오래 볼 수 있는 곳이다. 상효원 수국은 6월부터 7월 말까지 개화한다. 수목원이 가장 빛나는 시기는 역시 봄과 가을이다. 4월에는 튤립과 겹벚나무, 참꽃나무가 함께 피며, 10월에는 금목서가 만개한다.

이 외에도 제주 도목인 녹나무(캄포나무), 말오줌때나무, 금목서 등 개성 넘치는 나무도 한가득이다. 금목서는 동요 ‘반달’에 등장하는 계수나무로 향이 워낙 좋아 샤넬 넘버5 향수의 원료로도 쓰인다고.

제주 숲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숲 학교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해보자. 희귀 특산식물을 활용해 반지 만들기, 레진 키링, 손수건,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고 하루 4타임 예약제로 진행한다.

# 제주에서 수국이 가장 예쁜 곳 휴애리 자연생활공원

상효원이 아직 덜 유명한 중산간 명소라면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은 사시사철 붐비는 여행지다. 2004년에 개장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휴애리’라는 이름은 ‘휴식’과 ‘작은 동산’을 뜻하는 제주 방언 ‘애리’가 합쳐진 말이다. 휴애리가 유명해진 이유는 사계절 내내 다양한 꽃 축제를 즐길 수 있어서다.

봄에는 매화와 유채꽃,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핑크뮬리, 겨울에는 동백 등 한라산을 배경으로 만개한 꽃동산을 만끽할 수 있다.

초여름 6월은 수국이 한창인 계절이다. 휴애리에서는 볼 수 있는 수국은 유럽수국(서양수국), 여름수국, 산수국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온실이 있어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수국을 감상할 수 있다.

온실 수국은 4월 중순부터 시작하고 야외 정원에서는 6월 중순부터 노지 수국이 만개한다. 파란색, 분홍색, 보라색, 흰색 등 토양의 산성도와 품종에 따라 달라지는 형형색색의 수국을 볼 수 있다.

휴애리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온몸으로 즐기는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감귤 따기, 화산송이 맨발 걷기, 계곡물 맨발 체험 등 제주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도 진행 중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토끼와 염소, 말, 돼지 등 동물에게 먹이주는 체험도 빼놓지 말자. 공원 전체는 철분과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송이 지대로 맨발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 제주도에 딱 8명 조리기능장의 갈치조림 식당

제주 여행에 미감을 풍성하게 하는 식당을 추천한다. 제주시 도두항서길 65번지에 위치한 몰래물 식당은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 여행을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들르기 좋다.

이곳은 서울과 인천·제주 특급호텔 출신 양충훈 셰프가 운영하고 있다. 제주 출신인 양 셰프는 호텔 생활을 접고 2021년 어머니 고향인 도두항 주변에 몰래물 식당을 열었다.

몰래물은 모래와 자갈이 있는 곳에 솟아나는 물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양충훈 셰프는 나라에서 인증하는 조리기능장이다. 참고로 제주도에 조리기능장은 양충훈 셰프를 포함해 딱 8명 있다.

특급호텔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양 셰프가 몰래물식당에서 전문으로 내세운 것은 바로 생선 조림이다.

대표 메뉴는 은갈치조림과 활우럭조림으로 신선한 생선에 무와 두부, 시래기를 함께 넣어 넉넉하게 요리한다.

여기에 톳밥과 돔베고기, 우럭구이, 우뭇가사리국, 튀김, 게장과 각종 밑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 나온다. 짜지 않고 적당히 매콤한 갈치 조림 양념을 톳밥에 삭삭 비벼 먹으면 밥 두 공기는 거뜬하다.

두툼한 갈치 속살까지 양념이 흠뻑 배어 처음부터 끝까지 간이 똑같다. 약간 짜다 싶으면 갈치 순살로 만든 튀김을 중간중간 먹으면 조화가 환상적이다.

밑반찬 중에는 제주 황게로 담근 게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린 맛 전혀 없이 달콤하고 새콤한 것이 적당히 짭짤해 계속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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