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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첫 국정 시험대가 될 관세협상 “타국에 비해 더 불리하지 않게 조율”

  • 추동훈
  • 기사입력:2025.06.26 16:24:16
  • 최종수정:2025-06-26 16: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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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관세협상’이란 시험대에 올랐다. 실용주의와 국민경제 중심의 정치철학을 앞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이 대통령이 결코 녹록지 않은 글로벌 무역 전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냐에 따라 집권초반 외교력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관세전쟁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닌 만큼 국가별 이해관계와 손실을 따져가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평가된다. 또한 반도체, 전기차, 철강, 배터리 등 주력 수출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이재명 정부의 첫 통상 전략이 산업계의 ‘운명을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국제 무역질서는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말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취임하자마자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미국 제조업 재건, 불공정 무역 시정을 앞세워 관세 인상 정책을 전면 가동 중이다.

’관세전쟁 2.0’이라 불리는 트럼프의 통상 정책은 지난 4월 구체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자리를 뺏는 불공정 수입품에 대해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보편관세에 더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전세계와의 관세전쟁에 나섰다. 문제는 G2 국가인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EU 등 전통적 우방국 역시 예외없이 관세부과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상호관세 시행 직전 이를 90일간 유예하며 현재 국가별 관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6일 지난 5월 영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한 내용 일부를 이행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6일 지난 5월 영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한 내용 일부를 이행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연합뉴스>

가장 먼저 영국이 미국과의 협상 결과를 도출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 앨버타주의 휴양도시 캐내내스키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양자회담을 하고 양국 간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우선 미국은 영국산 자동차 연간 10만 대를 할당량(쿼터)으로 정해 10%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존 상호관세 상 25%를 부과하는 것보다 15%포인트 낮아졌다. 아울러 미국이 50%의 관세를 부과 중인 외국산 철강·알루미늄과 관련, 영국이 공급망 보안 및 생산시설 소유권 관련 미국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려 노력하는 조건으로 영국산 철강·알루미늄 및 그 파생 제품에 대해선 최혜국 대우 관세율을 적용할 할당량을 신속하게 설정하기로 했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이견을 좁혀가고 있다. 100%가 넘는 관세폭탄을 서로 주고 받은 양국은 최근 이를 거둬들이기로 결정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희토류에 대한 공급 확보가 절실한 미국 입장과 미국산 반도체 공급을 원하는 중국과의 입장차이를 좁히면서 온도차를 조율하는 상태다.

사진설명

이런 가운데 정치 리스크로 인한 리더십 공백 사태를 겪어온 한국 역시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이 취임한 만큼 기존 협상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을 정권 초 최대 외교·통상 과제로 삼고 총력전에 돌입했다. 후보 시절부터 “외교는 국민경제를 지키는 도구”라고 강조해온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이른 외교 데뷔전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캐나다 카내내스키스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참석차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중요한 건 최소한 다른 국가에 비해서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관세 정책 대응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혔다. 실제 구체적인 협상은 워낙 변수가 많은 만큼 명확하게 규정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대한민국만 손해보는 구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우리 기업인들도 다른 나라와 동일한 조건이라면 어차피 똑같은 경쟁인데 해 볼만 하지 않냐는 말을 하더라”며 “외교라는 게 한쪽에만 이익이 되고 다른 쪽에 손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모두에게 도움되는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야 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되겠다”고 밑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여러 조건들이 많이 겹쳐 있기 때문에 얘기를 해보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란 분쟁으로 인해 조기 귀국하며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월 16일 여한구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을 단장으로 한 ‘대미 협상 태스크포스(TF)’를 공식 발족했다. TF는 산업·에너지·무역 전반을 아우르는 협상 패키지를 구성하고, 이행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기존 국장급 실무 협상 라인을 1급으로 격상하고, 국장급을 반장으로 하는 ▲협상지원반 ▲산업협력반 ▲에너지협력반 ▲무역투자대응반 등 4개 실무 작업반을 편성해 분야별 대응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6월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제46회 통상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6월 17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제46회 통상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통상추진위원회(통추위)’ 회의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범부처 통상 전략 회의로, 국무조정실을 비롯해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총 15개 부처가 참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 통상당국은 취임 약 3주 만인 6월 말, 미국 워싱턴DC에서 관세 협상을 공식 재개했다. 이번 협상에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직접 참석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동했다.

3차 기술 협의에서는 미국 측이 중점 요구한 비관세 장벽 완화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미국은 앞선 2차 회의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규제 완화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은 자국 산업 보호와 국민 정서, 정보보안 문제를 이유로 일부 안건에 대해 강경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상호 관심사를 좁혀가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의 예외 적용과 추가 관세 면제를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기술·농업·디지털 통상 등 분야별 맞춤형 협상 전략을 통해 실질적인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간 관세협상의 관전 포인트는 여러 현안간 조율 여부다. 양국은 이번 협의를 시작으로 향후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보조금 문제, 디지털세, AI 데이터 규제 등 첨단 통상 이슈까지 협상의 범위를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측은 한국의 디지털 규제 체계를 문제 삼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내 국산 인정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오는 7월 말까지 각 작업반별로 세부 협상 전략을 정리하고, 하반기 중 제4차 공식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늦었지만 체계적인 대응체계를 갖춘 만큼, 이번 협상이 한국 통상 외교의 시험대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새정부 출범에 발맞춰 산업·기업별 관세 정책 대응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관세 상승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동차, 가전, 배터리 등 주요 산업들은 여전히 경고등이 짙게 들어온 상태다. 사실상 대미 의존도가 높은 업종 순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정부 정책과 함께 기업들의 기민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둔 현대차의 고심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에 대한 20%가 넘는 관세를 예고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해외생산 자동차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로 인해 한국산 자동차의 북미 시장 점유율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데 최소 수년이 걸리는 만큼 이러한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이다. 산자부는 해외 공장 이전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미국 진출 중소 부품업체 대상 정책 금융 지원 등 여러 정책 지원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 여파가 미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 역시 새 정부의 무역 통상 정책에 발맞춰나갈 예정이다. 두 회사 모두 미국과 중국 양국에 주요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실리적인 판단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한·미 반도체 협의체’의 상설화를 추진하며, AI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R&D) 예산의 공동 집행을 통해 협력 프레임을 강화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 역시 트럼프발 보조금 축소 공포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정부서 제공했던 대규모 배터리 생산 보조금이 일부 축소되거나 폐지될 가능성이 큰 만큼 한미 관세 협상에서 배터리 부문에 대한 관세 부과 예외 및 면제와 같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은 핵심 소재 국산화 및 리사이클링 기반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 역시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자원외교 확대, 국내 배터리 리사이클 세액공제 법안 통과를 추진 중이다.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철강·화학 산업은 유럽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과 미국의 232조 관세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특히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 업계는 탄소 비용 증가와 수출량 감소라는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US스틸을 필두로 한 미국 철강 기업 보호를 천명한 만큼 이로 인해 상

대적으로 피해가 커지는 국내 철강업체들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이러한 관세 여파를 잘 인지하고 있는 만큼 협상카드로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여러 정책적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이번 관세 갈등을 단순한 외교 마찰이나 통상 협상의 차원으로 보지 않고, 산업 구조와 외교 전략을 재설계해야 할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경제 없는 외교는 공허하고, 외교 없는 경제는 무기력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외교의 모든 기조를 산업과 직결된 실용 중심의 국익 외교에 두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 수출 구조 재편과 글로벌 시장 다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핵심은 미국과 중국 중심의 수출 의존도를 완화하고, 동남아·인도·중동·남미 등 신흥 전략 시장을 새 축으로 삼을 수 있느냐다. 이른바 ‘탈(脫) 편중 외교’로도 불리는 이 정책 방향은, 외교와 산업이 통합된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미국의 규제 하나에 수출이 꺾이고, 중국의 조치 하나에 생산라인이 흔들리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시장 다변화와 전략적 리스크 분산이 앞으로 산업 생존의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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