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2개국 289개 화랑 집결
국제갤러리·갤러리현대 등 참가
김윤신·박서보·하종현 등 조명
89년생인 한국의 전현선 작가
‘언리미티드 섹션’에 초청 영예
실험적인 대형 설치작품 선보여

세계 최고 권위의 글로벌 아트페어인 ‘아트바젤(Art Basel) 2025’가 지난 17~22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이기도 한 아트바젤은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와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올해는 세계 42개국 289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를 비롯해 티나킴 갤러리, 글래드스톤, 화이트큐브, 페이스갤러리, 페로탕, 타데우스 로팍, 에스더쉬퍼 등 서울에 지점을 둔 글로벌 화랑들이 참가하면서 일부 한국 작가들이 조명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한국의 수채화가 전현선이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션에 초청되는 영예를 안았다. 언리미티드 섹션은 미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향후 주목할 만한 동시대 작가를 선정하는 대형 설치 특별전이다. 전통적인 전시 부스의 공간 제약을 넘어서는 기념비적 대형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등을 선보인다. 1만6000㎡ 규모의 별도 전시장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부터 실험적인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선구적 작품들이 소개된다. 과거 한국에서는 이우환, 전광영, 김수자 등 중견 작가들이 초청됐지만 전현선처럼 국내 기반의 젊은 작가가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현선은 언리미티드에서 대형 설치 신작 ‘Into the Woods to Lose Our Way’를 선보였다. 분절된 상태로 곡면을 이루는 여러 점의 캔버스 회화를 통해 정지된 이미지의 변화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형태의 ‘회화 설치’ 작품이다. 관객이 비스듬히 서서 바라봐야만 작품의 전체가 보이는 3차원의 공간적인 구성은 그간의 관습적인 시각을 뒤흔든다.
1989년 인천에서 태어난 전현선은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녹색, 검정색, 파란색을 주조색으로 삼아 자신만의 고유한 회화 언어를 구축했다. 그의 조형 언어는 초기 비디오 게임의 픽셀을 연상시키는 단순화된 형태에서 복잡한 구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된다. 상징적 기하학과 암시적 풍경 사이를 오가는 이런 형태들은 시적 부재감과 인공적 존재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근에는 캔버스에 수채화를 사용해 미세한 붓질을 축적하며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화면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번 전현선의 언리미티드 섹션 전시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작가를 서포트해온 갤러리2와 작가의 글로벌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독일의 글로벌 화랑 에스더쉬퍼, 최근 작가의 첫 프랑스 파리 개인전을 개최한 갤러리 르롱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앞서 2023년 에스더쉬퍼는 서울과 베를린에서 한국작가 단체전을 동시 개최하고, 참여 작가 중 전 작가와 지난해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전속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아트바젤에서 근현대 미술사를 아우르는 국내외 작가들을 나란히 소개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의 ‘색채묘법’ 연작과 색채의 변주가 돋보이는 하종현의 ‘접합’ 신작, 이우환의 ‘Dialogue’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박서보의 ‘Écriture No. 230101’(2023)은 세라믹 위에 불타는 듯한 붉은 색감을 담아낸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VIP 프리뷰 개막 첫 날 하루에만 하종현의 작품 4점이 팔려나가며 호응을 얻었다.
개념미술가 김용익의 ‘물감 소진 프로젝트: 名(兕) ―3’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조각가 김윤신의 ‘내 영혼의 노래’, 회화로 자연의 원리를 풀어내는 문성식의 ‘그냥 삶’도 함께 소개됐다. 그 밖에 양혜규, 강서경, 최재은 등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보여 주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됐다. 해외 작가 중에는 아니쉬 카푸어, 다니엘 보이드의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 이승택의 솔로 부스를 선보인 갤러리현대는 미술전문 플랫폼 아트시(Artsy)가 선정한 ‘2025 베스트 부스 톱10’에 선정됐다. 이승택은 1950년대부터 조각, 평면, 설치, 퍼포먼스, 대지미술, 포토페인팅, 콜라주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확장해 온 대표적인 작가다. 이번 아트바젤 전시에서는 1960년대 작품부터 근작에 이르는 ‘묶기’ 연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이승택의 작품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홍콩 M+ 미술관, 아랍에미리트의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바 있다.
한편 아트바젤에 따르면, 장기화된 글로벌 경제 침체 속에서도 올해 아트바젤에는 총 8만8000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이케 크루제 아트바젤 디렉터는 “올해 아트바젤은 세계 미술 시장의 지속적인 힘과 회복력, 국제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