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맛으로 먼저 다가오는 봄
강진에서 18년 유배 생활 보낸 정약용
그를 따라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걷다
강진의 봄은 맛으로 가득하다. 강진만과 들판, 월출산 자락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땅이 온갖 진수성찬을 차려낸다. 일단 녹차를 마시고 시작했다. 바지락 비빔밥과 돼지불고기도 먹킷리스트에 담은 사이사이, 봄을 맞이한 다산초당과 가우도를 다녔다.

원고를 쓰다 창밖을 바라보니 벚나무가 어느덧 환한 벚꽃을 피워 물고 있다. 바람이 지나가면 머리를 털어내듯 흔들리고, 벚꽃 잎이 우수수 쏟아진다. 원고 같은 건 써서 뭐 하나. 세월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내게 남은 봄은 이제 몇 번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제프 다이어가 그의 책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래, 맞다.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랬지. 그렇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여행이다. 어디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 게다가 이토록 완벽한 날씨가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자, 어딜 갈까 고민하다 강진이 떠올랐다. 지금 강진엔 봄 바지락이 제철이고 햇녹차도 막 나올 시기다. 가서 실컷 먹고 쉬다 오자. 나머지 인생은 그 다음에 생각하고.

녹차에 깃들인 그윽한 봄
강진 땅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들판 곳곳에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바람은 잔잔했으며 햇빛은 배부른 고양이처럼 순했다. 마른 오이처럼 오그라들었던 마음이 반듯하게 펴지는 느낌이었다. 차를 타고 강진 곳곳을 돌아다니는 내내 월출산이 보였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앞에서는 오랜 시간 탑 주변을 서성였다. 탑 너머로 보이는 월출산 꼭대기가 믿음직스러웠다.
일단 차를 한 잔 마시자. 강진은 녹차의 고장이니까. 다산 정약용도 이곳의 차를 각별히 사랑했다. 월출산 남쪽 월남마을에는 다산의 차를 재배했던 다원이 있다. 전남 최대 사찰이었던 월남사지 앞에서 제다를 해온 다부(茶父) 이한영 가문의 생가, ‘이한영 차문화원’이 그곳이다. 강진으로 귀양 온 다산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시헌이 매년 스승에게 보내던 ‘옥판차’를 계승한 집이다. 이한영 차문화원의 이현정 원장은 이시헌의 7대손이자, ‘백운옥판차’를 국내 최초의 차 브랜드로 만든 이한영 선생의 고손녀다.

1830년 유배가 끝난 후 남양주로 돌아간 다산은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잘 받았다. 고맙다. 내 몸이 좋지 않아 오직 떡차(틀에 눌러 떡 모양으로 만들어서 굳힌 차)만 의지하고 있는데, 다시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또 보내다오.” 그리고는 나무란다. “지난번 보내준 차는 거칠었다. 반드시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다산과 이시헌은 ‘다신계’라는 차 약속을 맺었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이 해마다 차와 글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 약속은 100년 넘게 이어졌고, 그 마지막을 지킨 이가 바로 이한영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차가 우리 이름으로 팔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백운옥판차’라는 이름을 남겼다.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차라는 뜻이다.

우리가 몰랐던 비밀의 정원
차를 마시고 백운동 정원으로 갔다.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 선비 이담로가 지은 별서정원으로, 조선시대 원림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백운동 원림으로 가는 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울창한 대숲이 바람 소리를 음악처럼 들려준다. 바닥에는 동백나무 뿌리가 엉켜 있다. 세상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 무렵, 어느새 정원이 나타난다. 지금껏 몰랐던 또 다른 풍경 앞에서 불현듯 마음이 환해진다.
전설처럼 잊혔던 백운동 원림을 복원하게 된 것은 다산이 시를 짓고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려 만든 『백운첩』 덕분이다. 1812년 어느 날, 유배 중이던 정약용이 제자들과 월출산을 등반한 뒤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묵는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그는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은 12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로 쓴다. 이를 합쳐 묶은 것이 바로 『백운첩』이다. 이 시화첩이 발견되면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뻔했던 백운동 정원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정원 뒤편 정선대에 오르면 백운12경 중 제1경인 월출산 옥판봉과 함께 정원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목련 가득한 숲길
백운동 원림을 나오니 배가 고팠다. 예전엔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음식을 생각하는 게 어딘가 미안하게 느껴졌지만, 요즘은 음식부터 생각난다. 고백하자면,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앞에서는 동행에게 “커피나 한잔하러 가자”고 말했고, 터키 카파도키아 열기구 안에서는 ‘호텔로 돌아가 크루아상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나이가 드니 먹는 게 좋고, 음식 앞에서 진심이 된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20분 넘게 바라만 보고 있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도 곧장 강진이 고향인 김영랑의 생가 근처 왕성식당으로 향했다. 봄 제철 바지락이 들어간 바지락 비빔밥이 유명하다. 강진만에서 갓 캔 바지락에 미나리와 죽순을 넣고 새콤달콤한 양념으로 버무렸다. 한 입 떠 넣자마자 입안 가득 봄이 넘쳐났다.

부른 배도 꺼트릴 겸 다산초당으로 갔다. 강진 하면 정약용이다. 경기 남양주 출신인 그는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을 살았다. 1801년부터 1818년까지, 그의 나이 40세에서 57세까지의 시간이었다.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처음 4년간 강진읍성 동문 밖 주막집 바깥채 ‘사의재(四宜齋)’에 머물렀다. ‘사의재’는 생각과 용모, 언어, 동작이 올바른 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그는 주막에서 일하던 표씨 부인과 인연을 맺고 딸 홍림을 낳는다. 그 뒤 그를 불쌍히 여긴 해남 윤씨 일가가 다산초당을 지어주었고, 그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다산은 거처를 옮기며 “이제야 생각할 겨를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기분 좋은 숲길이다. 울창한 대숲에서 맑은 바람 소리가 흘러나온다. 대숲을 지나면 초당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다산이 ‘丁石(정석)’이라는 글씨를 새긴 바위, 차를 끓이던 약천, 연못 가운데 작은 산처럼 꾸며진 ‘연지석가산’이 있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초당만 보고 되돌아가지만,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반드시 걸어볼 만하다. 600미터 오르막, 200미터 내리막으로 구성된 길이지만 완만하여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도착한다.
이 오솔길은 단지 풍광만이 아니라 이야기로도 가득하다. 유배 시절, 다산은 혜장 선사와 교류하며 백련사까지 이 길을 오갔다. 혜장에게서 다도를 배우고, 담론을 벌이며 걷던 이 길은 다산에게 외롭지만 지혜로운 유배 생활의 일부였다. 백련사는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곳이다. 동백꽃은 예부터 세 번 핀다고 전해진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그리고 당신 마음속에서 한 번. 지금 백련사에는 바닥을 붉게 물들인 동백이 가득하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한정식
저녁에는 한정식을 먹었다. 강진의 유명한 집, 멋진 한옥 건물이다. 여행 중엔 종종 이런 집을 찾게 된다. 강진에는 한정식 집이 유독 많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해태식당이 대표적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연초록 도자기에 담긴 반찬들이 상 가득 올라왔다. 홍어삼합, 생선회, 전복회, 생고기, 주꾸미, 새우치즈구이, 대구찜, 홍어무침, 완자전 등등. 젓가락이 바쁘게 접시 사이를 오간다. 돼지고기와 표고 탕수육이 뒤이어 나왔는데, 돼지고기에서는 은근한 불맛이 났고 탕수는 바삭하면서도 쫄깃했다. 마지막엔 보리굴비와 꽃게무침, 갓김치와 밥, 국이 나왔다.
한정식이 부담스럽다면, 병영면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조선 중후기 육군 사령부가 있던 장소로, 수인산과 화방산 등으로 둘러싸인 천연 요새 같은 분지다. 여기엔 독특한 돌담이 있다. 높이 2미터에 달하고, 길이는 무려 10킬로미터. 빗살무늬 모양으로 쌓은 돌담은 제주도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이곳에 끌려와 8년간 억류되었을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엔 하멜기념관도 있다.

미식가들에겐 병영이 ‘돼지불고기의 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초입엔 돼지불고기 거리가 형성돼 있고, 집집마다 불맛 가득한 양념 돼지고기를 석쇠에 구워 낸다. 곁들이 반찬만 해도 열두세 가지는 된다. 거의 한정식 수준이다. 그런데도 1인분에 1만 원 정도로 가격도 착하다.
봄 햇빛 받으며 봄 바다 산책
다음 날, 가우도로 향했다. 강진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다. 강진만은 여덟 개의 섬을 품고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 바로 가우도다. 내륙 쪽으로 움푹 들어온 강진만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우도’라는 이름은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2011년, 대구면 저두 선착장에서 가우도까지 438미터 길이의 다리가 놓였고, 이듬해엔 섬 반대편 가우마을과 망호마을을 잇는 716미터짜리 출렁다리도 생겼다. 출렁다리 중앙에는 소뿔처럼 날카로운 교각이 솟아 있다. 두 다리 모두 보행자 전용이다.

다리가 놓이면서 섬 둘레를 따라 ‘함께해(海)길’이라는 나무데크 생태 탐방로가 생겼다. 해변의 생김새를 따라 들쭉날쭉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바다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경사가 거의 없어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약 한 시간 반.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기도 좋다. 해질녘엔 출렁다리 너머로 붉게 지는 노을이, 밤에는 조명이 켜진 다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진만생태공원도 찾았다. 전라남도 3대강 중 하나인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약 20만 평 규모의 갈대 군락지가 펼쳐진다. 남해안 최고의 생태 서식지이자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나무 데크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습지 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곳에는 1,131종의 생물이 살고 있으며, 그중 10종은 멸종위기종이다. 입구에 있는 배 모양 전망대에 오르면 약 26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어서,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데 활용하면 좋다.

한 입 먹으면 한 살 젊어집니다
이번 먹킷리스트엔 회춘탕도 있었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닭, 오리, 문어, 전복 등을 넣고 끓여낸 보양식이다. 육수는 약재가 진하게 스며 있다. 엄나무, 느릅나무, 당귀, 꾸지뽕, 가시오가피, 칡, 헛개나무 등 20여 가지가 들어간다. 이름 그대로 한 그릇 먹으면 진짜 젊어지는 기분이다.
회춘탕은 조선시대부터 유래된 음식이다. 1499년, 강진 마량에는 수군 부대인 마도진이 설치돼 있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 있었고, 그 성에 머무는 양반들을 대접하기 위해 회춘탕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양반들이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니, 그만큼 격식을 갖춘 음식이었을 것이다.
강진에서 보고, 먹고, 마시다 보면 1박 2일은 금세 지나간다. 이번 여행은 허리띠를 풀고 인생을 ‘낭비한다’는 마음이 아니라, ‘탕진한다’는 각오로 다녔다.

강진 사람에게 물었다.“강진엔 맛난 국숫집이나 만둣집은 없어요?”그가 대답했다. “그걸 왜 먹어요. 철마다 이러커니 맛난 것들이 많은디.”이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강진에서는 굳이 흔한 음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철 따라 나는 것들, 그때가 아니면 먹지 못하는 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미국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다.”
날씨가 화창하면 마음이 즐겁고, 식사가 맛있으면 인생이 행복하다. 좋은 날씨 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인생은 결국 평온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강진을 여행하면 이 말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아무튼 강진에서의 1박 2일. 화창하고 배부르고 그래서 행복한 봄날이었다.

한정식은 시민운동장 앞에 있는 청자골종가집이 유명하다. 강진읍내에 자리한 오케이식당은 현지인들이 가는 백반집이다. 아침식사를 하기에 좋다. 앉으면 반찬 14~15가지가 담긴 쟁반이 놓인다. 회춘탕은 은행나무식당이 유명하다. 병영면에 가면 ‘돼지불고기거리’가 조성돼 있다. 배진강은 돼지불고기를 연탄불에 석쇠로 초벌구이를 해서 내주는 곳. 함께 나오는 반찬도 하나같이 맛깔스럽다.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설성식당도 유명하다. 홍어와 편육 등 반찬 십여 가지와 함께 오른다. 주문을 하면 상째로 들고 온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6호(25.04.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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