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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천경자·이강소 … 한국 미술사와 동행한 현대화랑

55주년 특별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1970년 국내 첫 화랑으로 출발
가난한 화가의 벗이 되어주고
작품 진면목·가치 세계에 알려
'미술 대모' 박명자 회장 이어
아들 도형태 대표 실험작 발굴
5월 15일까지 서울 삼청로서

  • 김유태
  • 기사입력:2025.04.03 16:26:36
  • 최종수정:2025-04-03 19: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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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닭과 가족'(1954~1955년)
이중섭 '닭과 가족'(1954~1955년)
1970년 그때 그 시절, 화랑(畵廊·gallery)은 낯설고 생소한 용어였다. 미술품의 '가격'에 관한 기준이나 공감대가 부족했던 데다 혹 거래되더라도 동양화에만 관심이 쏠릴 뿐이었고, 서양화는 선물로나 주고받는 시절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동일한 층위에서 바라보는 본격 화랑 설립은 박토(薄土)이자 험지였던 한국 미술시장에서 고개를 돌려봐도 참고할 전례가 부족한 도전이었다.

그해 4월 4일, 종로구 관훈동 7번지에 27세 여성이 '화랑' 간판을 내걸었다. 서예나 자수, 골동품이 주거래품이던 인사동 거리의 한복판이었다. 이름은 현대화랑, 화랑주는 박명자(朴明子)였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화랑의 시작과 같았고 현재 화랑 가운데 현대화랑보다 장수한 곳은 없다. 모두가 현대화랑 설립을 한국의 현대적 화랑사의 기점이자 전환점으로 본다.

반세기 역사의 현대화랑(현 갤러리현대)이 4월 4일 55번째 생일을 맞았다.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등 한국 1세대 화백들의 작품이 모였던 바로 그곳이다.

천경자 '여인'(1990년)
천경자 '여인'(1990년)


갤러리현대가 개관 55주년 특별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를 8일 개막한다. 그 오랜 세월 현대화랑과 인연을 맺어온 거장 화백들의 작품을 시계열로 바라보는 전시다. 2일 열린 언론 간담회를 통해 미리 걸어본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선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장구한 서사의 흐름이 감지됐다. 아마도 그 이유는 박명자 회장과 수많은 화가의 일치된 목표, 또 상호 간의 존중과 예우의 정서가 전시장 곳곳에 무형의 진맥처럼 박동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특별전의 첫 번째 주인공은 이중섭 화백. 우선 이 화백과 박 회장의 인연을 이해하려면 시계추를 1972년으로 돌려야 한다.

현대화랑은 1972년 '이중섭 작품전(유작전)'을 열었고, 이는 당시 문화계에서 큰 화제였다. 당시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작품전 입장료는 100원이었다. "적자와 손해를 감수한" 전시였지만 애호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 화백과 현대화랑 명성은 비례하며 치솟았다. 매일 화랑 앞에 500명이 길게 줄을 섰는데 총관람객은 놀랍게도 5000명을 넘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이강소 '바람이 분다'(2024년)
이강소 '바람이 분다'(2024년)


"처음엔 손해를 각오했다지만 이렇게 유례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좋은 그림 앞에서는 누구나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점과 천재의 비극적 죽음을 아쉬워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동아일보 1972년 4월 1일자) 바로 그 이 화백의 '달밤' '닭과 가족' '사슴과 두 어린이' 등이 지금 갤러리현대에 전시 중이다.

박수근 화백과 박 회장의 남다른 인연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 중반 박수근 작품은 손바닥만 한 1호 크기(약 22.7㎝×15.8㎝)에 1000원 남짓이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엔 10만원으로 100배가 뛰었다. 그 시기를 동고동락했던 박 회장에게 박 화백은 "결혼 때 그림 한 점을 선물로 주겠노라" 약조했다. 박 화백이 이른 시기 세상을 떠나며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하지만 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후 박 화백 아내 김복순 여사가 '굴비' 작품을 박 회장에게 선물한 것.

박 회장은 2002년 박수근미술관 개관 당시 저 '굴비'를 포함해 박 화백 작품 50여 점을 기증해 오랜 인연을 더 빛냈다. 이번 갤러리현대 특별전엔 박 화백의 '초가집' '노상' 등이 그날들을 증거한다.

천경자 화백의 이름도 현대화랑의 역사에서 후순위일 수 없다.

사진설명


박 회장은 현대화랑 개관 3년 차인 1972년 9월 계간지 '화랑'을 창간해 미술계 주목을 받았다. 아틀리에 골방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고, 총 68페이지 잡지의 가격은 200원이었다. 이 잡지 창간호에 소개된 작품이 바로 천 화백의 당시 근작이었다. 이번에는 천경자의 '무제' '여인' 등이 한 세기를 지나 관객을 만난다.

도상봉, 박생광, 오지호, 김환기, 윤중식, 최영림, 박고석, 장욱진, 황염수, 김흥수, 박래현, 이대원, 임직순, 권옥연, 문학진, 변종하, 김상유, 김형근, 김종학, 류병엽, 황영성의 작품도 이번 전시의 1부(본관)에 가득 전시돼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번 특별전의 2부(신관)는 좀 더 현재적이다. 박 회장의 아들이자 2세대 화랑주인 도형태 현 갤러리현대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본격 시작된 '한국 실험미술 작가 다시 보기'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작가들, 아울러 도 부회장의 뉴욕대 재학 및 파리 유학 시기에 연을 맺은 디아스포라 작가들을 소개한다.

신관 3개 층을 꽉 채운 180점의 작품 가운데 지하 1층을 채운 '실험미술 선구자' 곽인식 작가의 작품에 특히 눈길이 간다.

그의 작품 '깨진 유리판'은 흙에 유리를 놓고 부드러운 천으로 덮은 뒤 쇠구슬을 떨어뜨려 깨지게 하고, 해체된 유리판을 다시 이어 붙인 작품이다. 깨진 유리판은 아무리 복원해도 '금'을 감출 수 없지만 곽 작가가 원형을 되찾게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엔 시간성이 개입된다. 이 과정이 인간의 삶을 빼닮았다는 점에서 그건 유리가 아니라 거울처럼 보인다.

백남준, 이승택, 곽덕준, 김차섭, 임충섭, 박현기,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신성희, 김명희의 작품은 갤러리현대가 걸어온 '두 번째 서사'로 2부 전시장을 채운다.

전시는 5월 15일까지, 무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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