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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지정학 | 트럼프 영토 확장 본질은 대중국 견제

  • 문수인
  • 기사입력:2025.01.24 16:57:43
  • 최종수정:2025.01.24 16: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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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이 1월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이 돌아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정책을 소개했다.
미국 백악관이 1월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이 돌아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정책을 소개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강한 고립주의를 지향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팽창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사실상 불가침 영역이던 영토주권을 적국이든 우방국이든 관계없이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가 다소 불명확한 측면이 있지만 세계는 관세 폭탄에 이어 또 다른 불확실성의 변수로 여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팽창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곳 마다 중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영토 확장 움직임의 본질이 대중국 견제라는 것이다.

취임 초 지리적으로 가까운 서반구서 美 패권 강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영토 확장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글로벌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는 것에서부터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사겠다’ ‘파나마가 관리하고 있는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가져오겠다는 등 그의 영토 야욕(?)은 하나의 국가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들 국가들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돌출 행동이 단순 해프닝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들이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관세’라며 자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에 대해 고율의 세금을 매겨 이익을 취하겠다고 하는 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정책 노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돌출 행동의 이유는 단순하다.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대중국 견제다.

먼저 그린란드는 중국이 최근 북극해에서 활동을 강화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중국이 북극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가 새로운 해상길의 요충지가 되고 있기 때문인데, 입지상 그린란드는 전략적 거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그린란드에는 석유, 가스 뿐만 아니라 네오디뮴 등 반도체나 전기차 제조에 필수인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파악돼 산업 전환의 시대에 그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에 중국은 극지 실크로드란 이름하에 그린란드의 항구 개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및 자원 개발 등을 추진하며 경제적, 군사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노력은 지금까지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미국이 끊임없이 물밑에서 견제를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이 그린란드 일대의 군사 거점 마련을 위해 덴마크 국방부가 방치해 둔 해양 기지를 매입하려 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힌 것은 중국의 이곳을 향한 공세가 여전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린란드는 미국뿐만 아니라 서방에 있어서도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다. 냉전 당시 소련 잠수함이나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의 방어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유효한 역할이어서 이 일대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한 전직 미국 장성은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공격할 때 주요 루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린란드의 분위기는 어떨까. 일단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사려면 덴마크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덴마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를 의사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입장은 다소 묘하다.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그린란드가 이 기회를 활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령으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내용은 그린란드 매입을 위한 의회 차원의 지지를 보내는 법안이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와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가져오겠다고 하는 것도 중국 견제책의 일환인 구석이 짙다.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는 내세운 이유는 파나마 운하를 관통하는 미국 선박에 대해 운영사 측이 부과하는 요금이 과도하는 것이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한 주체가 미국이라는 점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1914년 파나마 운하를 주도적으로 건설한 후 85년 넘게 파나마 운하를 관리했다가 1999년에 파나마 정부에 운영권을 넘겼다. 하지만 이보다는 자국의 턱밑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중국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파나마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중 국가다. 지난해 5월 우파 정권이 들어서며 다소 색깔이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국에 우호적이다. 파나마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사실상 글로벌 패권 정책인 일대일로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로는 최초로 가입했다. 이후 파나마에는 중국 자본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항구 개발부터 고속철도 건설 등 대형 인프라 계획이 추진됐다. 양국은 자유무역협정도 추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제권을 가지고 오겠다고 천명한 파나마 운하 전경.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통제권을 가지고 오겠다고 천명한 파나마 운하 전경. <사진 연합뉴스>

파나마 운하에도 중국 자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난 2021년 홍콩 회사 CK 허친슨이 운하 입구에 있는 두 개의 항구에 대한 통제권을 25년 연장하는 계약을 따낸 상태다. 허친슨이 중국 국영기업은 아니지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상태임을 감안하면 중국 당국의 입김은 홍콩 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파나마 운하의 네 번째 다리도 중국 측이 지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짓는 지정학 요충지이기도 한 파나마 운하에 중국 측의 영향력이 계속 확장된다면 이 역시 미국의 안보 차원에서도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관세 폭탄을 예고한 캐나다와 멕시코도 기저에는 중국이 깔려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대미 무역흑자국에서 글로벌 수위를 달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진행돼온 대중국 규제 속에 중국 기업들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우회통로로 삼았고, 이로 인해 이들 두 국가들의 무역흑자 기조가 강해진 측면이 있다. 3국(미국-캐나다-멕시코) 사이에 맺어진 협정(USMCA)을 활용하면 중국 제품이라도 원산지를 바꿀 수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부당하게 미국의 이익을 앗아가고 있다고 보고 관세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국가를 향한 영토 관련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그는 취임하기도 전에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라고 하는가 하면, 멕시코를 향해서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라고까지 했다. 멕시코만은 미 플로리다,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와 맞닿아 있어 미국이 약 절반 정도를 관할한다. 나머지는 멕시코가 대체로 관할하고 일부는 쿠바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와 멕시코를 향한 영토 의지는 확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회의사당 로툰다 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통해 파나마를 겨냥해 “무엇보다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중국에 넘겨준 적이 없고 파나마에 넘겼다”며 “이제 그것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멕시코만(Gulf of Mexico)과 관련해서도 명칭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겠다고 공식 천명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일으키는 지정학적 갈등의 전장이 미국과 가까운 곳들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대중 견제 목적이라 할지라도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이 그 대상이라는 점이 공교롭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팽창주의적 성격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 우선주의란 것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인데, 트럼프의 비즈니스 성향상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미국의 패권을 더 공고히 하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 “패권 유지 효과 측면에서 아시아보다는 서반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조 원장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대외 정책 행보는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그는 서민 대통령을 표방하며 농민, 노동자 등을 위한 정책을 주로 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이었던 인디언이나, 멕시코인들에게는 무자비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쇠락한 러스트벨트를 적극 공략해 당선됐고, 미국 우선주의 아래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오버랩된다.

전략적 가치 높은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관심은 적어

이 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향한 속내가 궁금해진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더라도 미국의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으면 그냥 두고 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여기서 들여다볼 국가가 베트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향해서는 영토 야욕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베트남은 좀 상황이 다르다. 대표적인 대미 무역흑자국(지난해 기준 세계 4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베트남도 대미 수출을 위한 중국의 우회로 성격이 강해 캐나다와 멕시코처럼 트럼프 진영의 눈밖에 나 있는 상태다. 연초 베트남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베트남을 직접 거론하며 미국으로부터 이익을 뜯어낸 국가라고 꼬집은 바 있다.

당연히 관세폭탄이 사실상 예고돼 있다. 이에 베트남은 항공기, 액화천연가스, 군사 장비 등 고가의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사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 이는 지리적으로 멀더라도 미국의 이익이 침해된다면 역시 강공으로 대외정책을 편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게 방위비분담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베트남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 전쟁의 수혜국이었지만, 이제 대미 무역흑자 4위 국가로서 트럼프 2기의 초강력 보호무역주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베트남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 전쟁의 수혜국이었지만, 이제 대미 무역흑자 4위 국가로서 트럼프 2기의 초강력 보호무역주의의 피해를 볼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 측의 움직임은 미국의 글로벌 패권 전략 차원에서 바람직한 분위기는 사실 아니다. 베트남이 대미무역흑자국이긴 하지만 지정학적 가치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일대는 미국 대외정책에서 전통적인 대중 견제 정책의 핵심 지역이었다. 미 군함이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이 실제 물리적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 전장으로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 국가들, 특히 아세안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여부도 미국의 패권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 지역에 대해 전략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직을 수행할 때도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당시 아시아 16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에 2년 연속 불참했다. 그래서 이 기조가 이번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싱가포르에 있는 아세안 전문 연구기관인 ISEAS 유소프 이샤크 연구소는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아세안에 무관심하고 다자주의에 회의적인 점을 감안하면 (2기 행정부에서도) 아세안은 미 외교 정책 의제에서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이에 반해 중국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대규모 투자 등을 단행하며 전략적으로 이 지역과 관계를 더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아세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중립주의를 표방하는 아세안 외교지만 최근 현지 분위기가 중국 쪽으로 다소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홍구 전 부산외대 총장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공급망 관리 기조 속에 세계의 생산 공장 역할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가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이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별로 득이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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