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 중 춘향 추천(추韆·그네 타기) 대목을 들을 때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장면이다.
판소리를 연구하는 인류음악학자 안나 예이츠 서울대 국악과 교수(36)는 판소리가 고전문학 작품으로서 강렬한 이미지(심상)를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판소리를 듣거나 사설집을 읽을 때 이야기의 장면이 내면에서 선명한 감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이츠 교수는 2월 1일 판소리 다섯 바탕의 눈대목(판소리에서 가장 두드러지거나 흥미 있는 장면)들을 직접 부르고 해설하는 공연 '상상속 그림을 찾아서'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연다.
그는 판소리 눈대목들이 품은 강렬한 이미지를 화공(畵工)이 머릿속 그림을 보여주듯 제시한 뒤 공연과 해설로 자신의 연구와 생각을 전달할 예정이다. 그는 "판소리를 논문이나 책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공연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지식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판소리에 대한 접근 장벽을 낮추기 위해 소리를 들을 때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노래를 하기 전에) 먼저 소개하려 한다"고 말했다.
독일 태생인 예이츠 교수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하고, 런던대 아프리카·아시아연구원(SOAS)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 중 판소리에 입문해 판소리 연구로 인류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 서울대 국악과 최연소 조교수로 임명돼 지난해 부교수가 됐으며 판소리와 대중매체의 관계, 판소리 팬덤 문화 등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음악 속의 문화, 문화 속의 음악을 연구하는 인류음악학은 한국에서 아직 낯선 연구 분야"라며 "이번에 학자로서 (공연이라는) 새로운 정보 전달의 방식에 도전하려 한다"고 밝혔다.
2014년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예이츠 교수는 인류음악학자로서 판소리 이론 외에도 실기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류음악학자는 연구 대상이 되는 음악을 실기적으로도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공연을 할 정도로 실기를 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는 실기에 숙달하는 만큼 해당 음악을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이츠 교수는 판소리의 표현력에 반해 판소리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 2013년 영국의 한국문화원에서 판소리 '적벽가' 공연을 처음 보면서 소리꾼이 노래(창)와 이야기(사설), 동작(발림)으로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당시 경험에 대해 그는 "'적벽가'의 새타령에서 소리꾼이 새 소리를 내는 것, 조자룡 활 쏘는 대목에서 활을 쏘고 화살이 날아가는 장면을 부채로 묘사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한국어를 몰라도 감정과 내용이 느껴질 만큼 표현력이 있었고, 자막을 보면서 공연을 관람하면 (소리꾼의 퍼포먼스를) 놓치게 되는 것이 아쉬울 만큼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독일 남부의 농촌에서 자란 예이츠 교수는 한국과 독일의 전통음악이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국악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쇠퇴한 것처럼 독일의 민속음악도 전통문화를 인종주의에 이용했던 나치가 패망한 이후 수십 년간 침체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민속음악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2년 뮌헨올림픽 전까지 국민들에게 외면됐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독일인의 일상이 됐다"며 "독일이 했으니 한국도 (국악의 부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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