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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대북방송 중지가 불러올 결과

北주민 유일 외부소식 통로
李정부 들어 방송중단 결정
내부변화·개혁 불씨 사라져
사활 걸고 막던 北정권 반색
'동결'된 사회속 갈등 누적땐
한반도 안보 불안 키울수도

  • 기사입력:2025.07.29 17:22:35
  • 최종수정:2025.07.29 17: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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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개월 동안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일련의 사건들이 조용히 전개돼 왔다. 미국 그리고 한국은 대북방송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했는데, 궁극적으로 이 결정들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부분적으로나마 민주화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물론 시장경제의 우월성이었다. 그러나 공산권의 일반 주민들과 간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면, 시장경제의 우월성 또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외부에 대한 정보의 확산은 공산권의 변화를 이끌어낸 핵심 동력이었다. 해외 방송을 듣는 것은 정보를 얻는 방법 중 하나였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자는 40년 넘게 북한을 연구해오면서, 대북방송을 열심히 들으며 세계 정세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북한 사람들을 다수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백성들보다 간부나 지식인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 중 일부는 탈북자가 됐지만, 다수는 탈북할 생각조차 없는 간부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늦은 밤에 대북 방송을 들을 수 있던 것을 오랫동안 당연한 일로 생각해온 북한 사람들은 익숙한 주파수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대북 방송의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중단됐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위기에 처한 방송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미국의 소리(VOA)였다. 올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를 겨냥한 이러한 방송들이 가치가 없고 재정 낭비라고 주장하며, 방송의 중단을 명령했다. 이는 예산 문제와 별개로 트럼프와 MAGA 세력이 미국의 국제주의적 사명을 부담으로 여기고, 더 이상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을 추진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새로 들어선 정부는 먼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전단을 살포하던 민간단체들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그 후 국가정보원이 지원하던 몇몇 라디오 방송국들 역시 방송을 정지했다. 지금 한국의 진보정부는 북한을 바꿀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한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이다.

그 결과 대북 방송의 총시간은 하루 415시간에서 89시간으로 줄어들어, 무려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남아 있는 방송국들도 후원 조건이 까다로워져, 향후 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한 당국자들은 미국과 한국의 이러한 결정을 매우 반가운 선물로 여길 것이다. 현상 유지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북한 지도부는, 외부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과거 어느 공산권 국가보다도 많은 재원을 투입해왔으며, 대북 방송을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공산권 국가들 가운데 라디오 주파수를 통제하고 외국 방송 청취 자체를 중범죄로 여기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방송의 중단은 단지 북한 체제 붕괴의 가능성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훗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점진적으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마저도 크게 낮춘다. 그동안 일반 주민들보다 외국 방송을 더 자주 몰래 청취해왔던 북한 간부들은 이제 외부 세계의 삶에 대해 배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며, 그에 따라 변화에 대한 요구 역시 점차 줄어들 것이다.

'동결'된 북한에는 내부 갈등과 문제가 더욱 누적될 것이다. 결국 불가피한 사회 변화를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형태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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