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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아름다움에 대하여

  • 기사입력:2025.07.28 17:59:52
  • 최종수정:2025-07-28 20: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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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대상은 어떤 사물보다 몸소 느끼는 순간이고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움은 소유의 대상이라기보다 경험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미술품을 구입해 소유할 땐 기쁘고 감격스럽기까지 할 것이나, 일단 소유하고 나면 마음에서 멀어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전시 공간에도 한계가 있어 할 수 없이 미술품 전문 수장고에 보관한다고 한다. 보관에도 상당한 보관료, 보험료가 추가된다. 이 정도가 되면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를 넘어 투자의 영역이 된다.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미술품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의 대상을 소유에서 경험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그 범위가 'close' 개념에서 'open' 개념으로 바뀌어 여러 가지 제한이 없어지고 자유로워진다.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중략)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시인의 시구와 같은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이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필자가 경험하고 있는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들을 소개해 보겠다. 이른 아침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장면, 어렵게만 생각했던 일이 해결되는 순간, 일을 위해 진지하게 토의하는 장면, 이른 봄 화단에 제일 먼저 피어 있는 수선화를 반기는 순간, 관점을 바꾸었을 때 달리 보이는 세상, 뜻 맞는 친지들과 유쾌한 대화를 하는 장면들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경험의 대상이므로, 따로 저장할 공간도 필요 없고 태평양같이 넓은 마음속에 얼마든지 넣어둘 수 있다. 그리고 오래 간직하면서 수시로 불러내 다시 즐길 수 있어 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마법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마음속에 저장한 아름다운 순간들 중 꽃비 오는 산책길을 시와 함께 걷는 장면 또는 신석정 시인의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빛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같은 시구를 소환하면 숙면에 특효약이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국화꽃이 피는 것에 흥분되고 감격스러워 잠까지 설치는 시인의 벅찬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렇듯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경험 역시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서정주 시인의 감수성에는 못 미칠지 모르지만 누구나 인생 항로를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순간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소유에서 경험으로 바꾸면 아름다움의 대상이 대폭 확장돼 더 많은 것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삶에 대한 만족도와 성취감도 자연히 올라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자기만의 아름다움 리스트를 만들어 수시로 추가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많이 갖고 있다고 시비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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