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명이지만, 사실 이제는 폭염도 폭우도 그 자체로는 뉴스거리가 아닌 지 오래다. 보도되는 수치는 놀랍지만, 감정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서울 노지에서 열대과일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렸다는 신기한 단신이나 밀려드는 물살에도 힘겹게 다른 이를 구한 영웅담에나 눈이 가지, 이제 우리는 '이상한 날씨' 그 자체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초복에 대서에 야외는 펄펄 끓는 한여름인데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필자는 사실 하루 중에 쾌적하지 않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고백한다. 일찍이 문화비평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란 저서에서 전쟁이나 재난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이 점차 그 고통에 무감각해진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이 겪는 고통은 그저 지나가는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무너진 옹벽도, 침수된 차량도, 폭염에 고생하는 노동자도 모두 지나가는 동영상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세상.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들려오는 날씨 관련 뉴스가 과연 '남의 일'일 뿐일까?
이런 질문에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2003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서 선보였던 '날씨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20여 년 전 우연히 운 좋게 런던을 가게 되어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테이트 모던과 엘리아손의 작업을 직접 본 것은 지금까지도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로 각인되어 있다.
사진과 조각 작품부터 몰입형 대형 설치·환경·건축 프로젝트까지 능수능란하게 매체를 넘나드는 엘리아손은 물, 색, 온도와 대기 흐름 같은 자연 요소를 이용해 관람객의 감각을 뒤흔드는 작업을 한다. '날씨 프로젝트'에서 엘리아손은 천장을 거울로 뒤덮고, 수백 개의 단파장 전구가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반원형 스크린을 멀리 설치한 뒤 가습 장치를 사용해 마치 전시장 안에 진짜 해가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이 신기하고 황홀한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전시 기간 약 반년 동안 무려 200만명의 관람객이 터빈홀을 찾았다. 이전까지 '숭고함'이란 오로지 웅장한 대자연만이 선사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엘리아손은 매우 큰 공간이기는 해도 결국에는 실내일 뿐인 미술관 내부에 기계 장치를 이용해 장엄한 숭고함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내면서 21세기 미술의 서막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 작품이 '아름다운 자연' 같은 이름이 아닌 '날씨 프로젝트'란 제목을 지녔다는 점이 더더욱 중요하다. 작가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마치 자연 속에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철저히 조작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점을 전혀 숨기지 않는 '날씨 프로젝트'는 극한의 위기마저 이미지로 소비하고 마는 우리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비바람 걱정 없이 적절한 온도로 조절되고 있는 실내에서 인공 태양을 즐기고 난 후 햇빛을 경험했다고 착각하는 관람객은 사실 실제 기후위기 앞에서도 불편한 진실보다는 통제된 이미지와 안락한 해석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단지 '엄청 더운 여름'이나 '역대급 홍수' 정도로 소비하다가 장관 인선이나 총기 살인 같은 다음 뉴스로 관심을 돌리는 사이 기후위기는 어느새 우리 삶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버렸다. 기후 문제는 더 이상 추상적 담론도 아니고 금융, 부동산, 물가, 노동 시장까지 영향을 주는 실물 리스크이자 구조적 변수로 자리를 잡아버린 지 오래다. 설령 잠시 수국에 눈을 뺏기더라도, 더 늦기 전에, 아무리 지겨운 잔소리로 들리더라도 머리 한쪽에는 이 위기를 분명히 각인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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