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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스트] 서울대 10개보다 더 중요한 것

대학, 행정에 혁신 발목잡혀
글로벌 기술 경쟁 이기려면
평균 아닌 상위값이 변해야
연구자 중심 구조전환 시급

  • 기사입력:2025.07.23 17:25:09
  • 최종수정:2025-07-23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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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교육이 국가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정치 혼란, 성장 정체, 혁신 부진은 모두 교육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통찰이다. "서울대 열 개를 만드는 것보다, 서울대보다 10배 좋은 대학 하나가 필요하다"는 그의 비판은, 교육 정책 전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아도, 이 질문은 저성장의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을 꿰뚫는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을 자랑하지만, 혁신 주도국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한다. 논문과 특허는 많지만, 질과 파급효과는 크지 않다. 연구비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식이 혁신으로 연결되는 통로'에 병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병목의 한복판에 한국의 '대학교육'이 있다.

'서울대 10개 vs 서울대보다 10배 좋은 대학 1개'라는 정책적 선택에 대한 뜨거운 논의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계, 언론 등에서는 '지방대학의 상향 평준화'와 '세계적인 대학 육성' 전략이 충돌한다. 새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전국에 고르게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우려가 크다. 평균 수준의 향상이 절실한 것도 사실이고 서울대 10개론은 입시경쟁 완화 측면에서의 상징성이 있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부지런히 따라가던 산업화 시대에는 평균 중심의 교육 정책도 일정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추격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세계적 혁신을 이끄는 리더십'은 '중간권의 상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필요한 것은 '절대적 선도역량'의 확보다.

혁신은 평균값이 아니라 상위값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우수 인재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고 연구 여건이 열악한 현재 상황에서는, 중간 수준의 개선만으로는 상위권 경쟁력이 함께 올라가지 않는다.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아무리 안정돼도, 팀의 스타 스트라이커가 계속 다른 팀으로 스카우트되어 나간다면 그 팀이 우승하기는 어렵다.

왜 한국은 '서울대보다 10배 좋은 대학'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대학이 교육부 중심의 공무원 조직처럼 운영되면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제약되는 구조적 현실이 있다. 예산, 인사, 행정 전반이 정부의 지침과 회계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교수는 연구자이면서 행정 서류 작성자로 기능한다. 연구비, 장비 구입, 인건비 집행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감사 회피가 우선이다. 17년간 동결된 등록금으로 세계적 연구자를 끌어오기는 어렵다.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활동하던 교수들조차 귀국 후에는 정부가 기획한 과제 중심의 연구계획을 수행한다. 대부분 단기 과제로 장기적 문제 설정이나 근본 탐구보다 단기 성과를 반복 제출해야 하는 구조다. 도전 정신보다 서류와 지출 규정에 순응하는 시스템 적응형 인재가 살아남는다. "AI 3대 강국"을 외치지만, GPT 구독이 연구비로 가능해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겸직 제한 역시 첨단 산업과의 협업을 막는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대학의 행정과 회계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창의적 탐구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 서류와 정량 평가에 쓰이는 구조에서는 세계 수준의 혁신이 나올 수 없다.

경제를 시장에 맡기듯 연구는 연구자와 대학에 맡겨야 한다. 한국이 혁신주도형 성장으로 전환하려면, 교육 철학보다 대학 운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다음 교육부 장관에게 기대한다. 대학이 한국 경제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성장의 거점이 되도록 뒷받침해 주기를. 더 이상 "교육부가 교육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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