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트르 펴냄)에 나오는 미국 철학자 제나 히츠도 뒤늦게 그걸 알았다. 그는 곳곳에 책이 널린 집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탐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어린 날을 보냈다. 공부가 좋았던 그는 고전학을 전공해 30대에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교수의 삶은 히츠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자유롭게 사유하면서 미지의 강물을 헤엄치는 아카데메이아의 이상은 흔적이 없었다. 대학은 윗사람 비위를 맞추고 타인을 짓밟아야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아수라장이었다. 출세를 위해 다투고, 특권을 누리려 버둥대는 아귀들의 집합소였다. 진정성이 파괴된 삶은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눈치 보는 공부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정신의 둑을 무너뜨려 메마르게 한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에 고뇌하던 히츠는 교수직을 던지고, 외딴 숲속의 한 공동체에 들어간다. 가난하고 소박하며 단순하고 고요한 그곳 삶은 그에게 공부의 기쁨을 돌려준다. 교수직을 얻지 못한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사유를 벼려서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듯, 그람시가 감옥에서 사색하며 한 사회를 지배하는 헤게모니의 힘을 깨달았듯, 공부는 흔히 홀로 떨어져 자기 질문을 되새김하는 데서 시작된다.
히츠는 말한다. "배움은 숨은 상태로 시작한다. 아이와 어른이 내면에 품은 생각에서, 독서광의 조용한 생활에서, 출근길 아침에 몰래 하늘을 바라보는 일에서."
공부는 이처럼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벗어나 자기 고유의 생각과 리듬을 돌려받는 일이다. 돈이나 지위를 얻으려 떠들썩하게 나대는 곳에 진짜 공부는 없다. 공부는 내 생각의 주권이 오직 나한테 있음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적인 삶은 존엄의 원천"이다.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늘에 핀 제비꽃을 들여다보는 사람, 흐르는 구름에 몽상을 얹는 사람은 이미 탐구하는 자다. 호기심으로 주변을 살피고 쓸데없는 궁금증에 신경 쓰는 사람은 스스로 자유롭다.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해도 괜찮다. "공부는 다가올 인생을 위한 준비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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