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러시아에서도 한류로 알려진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K팝 아이돌들은 여고생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고, 한국 드라마는 인기가 매우 높다.
그 때문에 러시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많이 좋아지고 있을까? 어느 정도 그렇다. 러시아에서 높이 평가받는 아시아 국가는 네다섯 개뿐인데, 한국은 그중 하나이다. 특히 자동차, 가전제품, 화장품 등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잘 보여준다. 당연히 한류 역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향상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에서 한국 이미지에 어느 정도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특히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보면, 한국의 성공을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많지만, '한국 때리기(Korea Bashing)'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때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을 양극화, 물질주의, 과로, 우울증과 자살의 나라로 묘사하는데 완전히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들을 매우 심하게 과장 평가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한국 때리기는 왜 등장하기 시작했을까?
아마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이다. 푸틴 정권의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한국을 친미 국가로 간주하고, 따라서 공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러·북 동맹 체결 이후, 러시아 사회에서 오랫동안 무시했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 그 때문에 북한의 주적으로 볼 수 있는 한국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도 없지 않은데, 그들의 '반(反)한국' 담론을 보면, 한국 진보파가 반복하는 '헬조선' 담론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한국 영화, 연속극 등 문화 작품은 갈수록 잘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 작품을 만드는 사람 대부분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비판적 의식이 강한 지식인들이다. 그 때문에 한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한국의 긍정적인 모습 형성에 많이 이바지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인기를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은 좋은 사례이다. 분명히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많은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헬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한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부자들이 즐기는 자살적인 놀이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거나 아니면 빈부 차이가 너무 극심해서 사람들이 대단히 열악한 집에서 살 수밖에 없는 나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허용할 때에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 작가나 감독들은 자신이 믿는 사상에 근거해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비판은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허용돼야 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객관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 한국 예술계에서 이와 같은 비판적인 의식에 대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예술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볼 때 그 업적과 성공을 보지 않거나 못 본 척하고, 대신 문제·결함·갈등을 잘 조명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작품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향상시키는 한편, 한국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악화시키고 있다.
물론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다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 더 많이 있다면, 이러한 불균형의 시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도 한국에서도 진보파의 영향이 많은 예술계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러한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할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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