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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관 주키퍼의 업세이] 짧은 인생 천천히

판다는 먹고 자고를 반복
느리지만 자기 삶에 집중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짧은 인생 천천히 살라고 해

  • 기사입력:2025.01.10 17:32:36
  • 최종수정:2025-01-10 22: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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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하루 일상 중에 가장 큰 특징은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판다의 1년의 행동들을 빠짐없이 열거해 보면 때마다 다른 신비한 활동도 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띄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은 규칙적으로 대나무를 먹고 자는 것이다. 맹수에 속한 판다가 왜 그런 삶을 택했는지는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터. 그 때문에 판다를 보기 위해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판다가 대나무를 먹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자는 모습, 둘 중 하나의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미 귀여운 외모의 판다가 더 귀엽게 움직이는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일수록 잠자는 판다를 마주하게 되면 탄식을 절로 쏟아낸다. 그런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쯤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행여나 방해할 생각하지 말라는 듯, 등을 돌리고 깊이 잠들어 버린 판다의 모습에 이들의 특성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살짝 속상한 마음에 원망스럽기까지 한 것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겠다.

특히 국내에 유일한 수컷 판다이자 아빠 판다로, 철저하게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러바오'는 고독하다 못해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판다 '러바오'는 가끔 어떤 기기의 단순한 기능이 탑재된 듯하다. 잠에서 깨어나 주변의 대나무를 찾아 차근차근 먹다가 어느새 정해진 양이 채워지면 어김없이 수면 모드로 전환된다. 또 겨울잠에 푹 빠진 한 마리의 곰이 그러하듯, 봄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깊은 잠을 자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나 세상 느긋한 대나무 '먹방'을 다시 시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러바오'는 느리고 단순하지만 마주한 자기의 삶에 집중하며 행복한 '판생(판다의 삶)'을 산다. 다양한 정보에 대한 욕구로 급하게 고민하며 산만한 삶을 만들지 않으니, 맹수가 채식주의와 충분한 수면을 선택하고 얻은 이 얼마나 빛나는 혜택인가. 우리보다 짧은 수명이기에 시간이 없다며 더 바쁘고 더 급하게 살아내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빠른 건, 너무 많은 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고. 그러니 당신들의 짧은 인생을 나처럼 천천히 그리고 단순하게 살아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그에 반해 판다를 보러 온 사람들은 매우 바쁘다. 아니 인류의 문명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모두의 인생이 빨라졌다는 것이 맞겠다.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많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잘해내야 하는 세상이지 않은가. 특히 요즘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홍수와 같은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 환경에서 오롯이 하나의 생각에 몰입하기 어렵고,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에 과부하로 집중력을 잃고 기억력과 판단력을 방해받기도 한다. 무수한 정보를 너무도 빠르고 쉽게 접하는 것이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토록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 이미 길이 든 듯하다. 빠를 대로 빨라지고,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이 세상에서 우리는 다소 느려지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지금에서 그것은 하나의 생각에 올바르게 몰입하는 것이고 불안을 떨쳐내는 것이며 자신의 행복한 삶을 맞이하는 행위일 테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도 알기에, 빠르게 사는 오늘보다 느리게 살던 어제가 마냥 그립기만 하다. 엉뚱한 상상이긴 하지만 조금 느린 봄을 맞을 수 있다면 동굴에서 판다처럼 대나무라도 먹으면서 보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이는 시린 겨울이다. 아! 이왕이면 긴 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장편의 소설책 여러 권은 꼭 필요하려나?



업세이 : '업(業)'과 '에세이'를 합친 단어로,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판다 가족을 돌보고 있는 송영관 주키퍼(zookeeper)가 동물 세계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송영관 에버랜드 주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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