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목숨 거는 대리인 vs ‘잔머리’ 대리인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25) ‘대리인 문제’의 오해와 진실

  •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기사입력:2025.08.01 21:00:00
  • 최종수정:2025-08-01 19:48:3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25) ‘대리인 문제’의 오해와 진실
기원전 406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그리스 패권을 걸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아르기누사이 해전은 아테네의 마지막 승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원전 406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그리스 패권을 걸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아르기누사이 해전은 아테네의 마지막 승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원전 406년 아테네는 숙적인 스파르타와 그리스 패권과 도시의 운명을 걸고 전투를 벌였는데 이것이 바로 아르기누사이 해전(Battle of Arginusae)이다.

당시 아테네는 시칠리아를 놓고 벌인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해 국력이 급격히 약화된 상태였다. 당연히 스파르타를 이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테네 해군은 죽음을 불사하는 자세로 스파르타군과 싸워 결국 승리했다.

그런데 아르기누사이 해전이 현재까지 잘 알려진 이유는 그 직후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스파르타군에 간신히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아테네 해군 함선도 피해가 막심해 전투가 끝난 후 바다에는 침몰하는 함선에서 뛰어내려 도움을 청하는 아테네 군사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하필 그때 거센 폭풍우가 불어오기 시작한 것. 아테네 장군들은 전투로 파손된 함선을 이끌고 폭풍우 속에서 구조 작업을 하려다 오히려 멀쩡한 함선도 침몰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구조 작업을 포기하고 항구로 피신했다. 이후 폭풍우가 멈추고 다시 구조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표류하던 아테네 군인 대부분이 바다에 빠져 죽은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아테네 시민들은 분노했다. 폭풍우가 두려워 구조 작업을 하지 않았던 장군들 때문에 자기 아들들이 사망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승리한 6명의 장군을 아테네로 소환해 재판을 하고 그날로 사형에 처했다. 이때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만이 장군들 처형을 끝까지 반대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가 장군들의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다만 오랜 전투로 배가 파손된 상태에서 폭풍우를 무릅쓰고 구조 활동을 하면 오히려 해군 함선 전체가 침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조 작업을 포기하는 판단이 옳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 해전에 참여하지 않고 안전한 아테네 도시에 있던 일반 시민들이 폭풍우 속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 것이 맞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래서 소크라테스 같은 현명한 시민은 장군들 처형을 반대했을 것이다.

그 이후 아테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바로 다음 해인 기원전 405년 아테네는 다시 스파르타군과 전투를 벌이는데 이것이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Battle of Aegospotamoi)이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 해군은 전멸했고, 한때 그리스 전체를 통치하던 도시국가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감시 아래 식민 통치를 받는 약소국이 되어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아르기누사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6명의 장군이 사형을 받은 직후 아테네 해군 지휘관들이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사기가 높았을 리 없다. 또한 가장 우수한 지휘관 6명을 잃었으므로 아테네군의 전투 능력도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경제학의 중요한 난제 중에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리인 문제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많은 분이 대리인 문제는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로 약속한 대리인이 꾀를 부리면서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주인이 대리인에게 어째서 성과가 미미한지 물으면 대리인은 자신은 최선의 노력을 하는데 운이 없어 성과가 아직 나지 않는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 대리인 문제의 전형적인 진행 과정이다.

하지만 엄밀한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주인-대리인 문제를 연구해 보면, 대리인이 꾀를 부리고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다름아닌 바로 주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무엇보다 주인도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데 대리인이 이런 상황에서는 꾀를 부릴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매번 속는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제 가까운 우리 한국 역사에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양에서는 경상도로 군대를 보내는데 이때 가장 먼저 파견한 장군이 이일(李鎰) 장군이다. 이일 장군은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왜군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파견되었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첫 전투에서 큰 실수를 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경상도 상주에 도착한 이일 장군이 왜군을 막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농민이 찾아와 왜군이 바로 근처까지 쳐들어왔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일 장군은 불과 며칠 전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벌써 상주 근처까지 왔을 리가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거짓 정보를 퍼뜨려 민심을 어지럽히는 그 농민이 왜군의 첩자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처형한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그 농민의 말처럼 왜군이 상주로 쳐들어왔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이일 장군은 패배하고 후퇴해야 했다.

갸륵한 농민의 행동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죽여버린 이일 장군 행동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은 후 조선군에게 왜적의 정보를 알리려는 농민 수는 급감했을 것이다.

다시 경제학의 주인-대리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주인이 대리인이 하는 업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경제학에서 비대칭 정보(Asymmetric Information)라고 하는데, 주인이 대리인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니, 대리인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자신은 열심히 일하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대리인 입장에서 반대로 해석해보면, 열심히 노력해도 어차피 주인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때 떠오르는 말이 바로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다. 주인이 대리인의 노력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대리인은 목숨이라도 바친다는 의미다.

고대 중국 병법의 대가로 유명한 위나라 장군 오기(吳起)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기는 늘 사졸들과 더불어 입고 마시는 것을 함께했다. 어느 날은 한 병졸이 종기가 났는데, 오기가 이를 입으로 빨아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병졸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자, 주위 사람들은 “장군이 직접 종기를 빨아주었다는데 왜 우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병졸의 어머니는 “오공께서 그 아버지의 종기를 빨아주었더니 전투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싸우다 적에게 죽고 말았소. 오공께서 이번엔 우리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그 아이도 어디서 죽을지 몰라서 우는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대리인의 복잡한 심리가 보인다. 열심히 일해도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기도 하지만, 인정을 받고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전투에서 목숨을 잃듯 결국은 엄청난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게 되는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많은 대리인 즉 현대의 월급쟁이들은 열심히 일하고 회사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대리인도 많은 고민이 있고 망설임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잘했을 때는 상을 내리고 잘못하면 벌을 내린다는 소위 당근과 채찍(carrot & stick)을 잘 사용하면 주인은 대리인을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확히 당근을 주고 채찍을 때리는 일은 주인 입장에서는 정말 고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항상 대리인의 바로 옆을 지키면서 당근과 채찍을 제대로 부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대리인이 주인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설명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0호 (2025.07.30~08.05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