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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칼럼] 들을 聽, 들을 聞

버티던 강선우 후보자 낙마
與 '이중잣대' 국민이 외면
청문회는 필요한 제도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모두 손해

  • 신헌철
  • 기사입력:2025.07.23 17:40:14
  • 최종수정:2025-07-24 1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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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낙마했다. 여론의 힘으로 권력이 들어서려는 잘못된 경로를 바로잡은 것은 의미가 있으나 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청문회가 제도화된 나라는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과 한국 정도다.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가 중요한 권력 구조를 택한 영향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처음 실시됐고, 노무현 정부는 대상을 장관직으로 확대했다. 우리가 미국 제도를 받아들여 25년간 운용한 결과는 어땠나.

과거 정권에서 인사에 관여했던 A씨는 "장관을 뽑으려고 스무 명에게 연락하면 서너 명이 검증에 동의한다"며 "배우자나 자녀들의 반대로 포기한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청문회에 나서기 위해선 벌거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논문이나 재산 문제는 물론 내밀한 가정사와 과거 발언까지 소환된다. 민간 인재가 공공 분야로 이동하기 힘든 배경에는 청문회에 대한 공포심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1기 내각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꼭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들 중 몇몇은 청문회장 문을 열지 않는 게 옳았다.

더 볼썽사나운 것은 여당의 낯 뜨거운 비호였다. '내로남불'은 엉터리 사자성어지만 충분히 직관적이다. 비판이 보편성을 잃는 순간 위선의 굴레에 빠진다는 교훈이다. 큰 논란이 됐던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의혹은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상징하는 '억강부약'과는 상극 아니었나.

한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의원은 임명 강행을 링컨의 결단에 비유했다. 일반 직장과 의원·보좌관 사이의 갑질은 다르다는 '갑질의 상대성 이론'까지 등장했다.

만약 국민의힘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민주당은 국회 로텐더홀에 집결해 항의 시위를 하고, 갑질 신고센터를 설치하지 않았을까.

민주당 방탄은 여론이 쏜 총알에 뚫리고 말았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논란은 또 생겨난다. 당장 내각보다 더 큰 힘을 지닌 대통령실 인사는 깜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극소수 측근들이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다는 잡음도 커지고 있다. 국민추천제 같은 물타기로는 어림없다.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시스템 정비 방안을 깊이 고민할 시점이라고 본다.

1916년 미국의 첫 공개 청문회가 남긴 울림이 있다. 어떤 철학을 지닌 사람이 고위직에 올라야 하는지 미국 사회 전체가 치열하게 토론한 청문회의 원형이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대법관 후보에 루이스 브랜다이스를 지명했다. 독점을 반대해온 진보주의자이자 시오니즘 지도자였던 브랜다이스를 막기 위해 반대 진영은 공세에 나섰다. 후보자의 출석 의무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청문회는 76일간 19차례나 열렸고 43명이 증언대에 섰다. 브랜다이스는 격론 끝에 상원에서 인준됐고 23년간 대법관으로 일하며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호 등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한국도 청문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의회조사국(CRS), 프랑스 공직윤리청(HATVP)처럼 전문성 있는 기구에 도덕성과 이해 충돌에 대한 사전 검증을 맡겨야 한다. 꼭 필요한 자료 리스트를 사전에 만들어 강제력을 높이고, 위증했을 때 처벌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적정 한도를 두고 청문 기간의 연장이나 증인 출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도 필요하다. 논란이 큰 후보자 청문회에는 국민 배심원단을 두고 의견을 들어보는 방법도 있겠다.

청문회(聽聞會·hearing)는 한자로도 영어로도 듣는다는 뜻이다. 여당 의원의 편들기 발언이나 후보자의 궁색한 해명을 듣자는 취지가 아닐 것이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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