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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사촌 여동생에 꽂혀버렸다…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42) 에드거 앨런 포의 절망

  •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 기사입력:2025.07.04 13:21:00
  • 최종수정:2025.07.04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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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에드거 앨런 포의 절망

20대 후반 거무튀튀한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동네 뒷담화 주 소재였다. 늘 취해 있는 모습에 어두운 표정. 외양도 외양이었지만, 최근 기이한 행동으로 입길에 올랐다. 그가 결혼을 선언한 상대방이 고작 13살에 불과한 어리디어린 여성이어서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입에서는 젖내가 풍길 듯한 그야말로 소녀. 엄마 품에서 한창 자라나야 할 나이에 음침한 사내 방에 들어가 수발을 들어야 한다니.

소녀를 향한 남자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글에는 어린 여성을 찬미한 작품이 수두룩했다. 내면에 들끓는 이상 성욕을 작품에 풀어내기 위해서였을지 혹은 문학은 그의 변태성을 가리는 도구였는지. 남자에게는 다섯 자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아동성애자.’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인 ‘롤리타’도 이 남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에드거 앨런 포’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 곧 사망한 어머니

고아가 된 포를 돌봐준 앨런 부부와 ‘또 이별’

에드거 앨런 포는 ‘검은 고양이’라는 작품으로 ‘암흑 낭만주의’ 새 길을 연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삶은 칠흑보다 어둡고, 심해보다 깊은 것이었다. 늘 어두운 밀실에 처박혀 어둠을 찬양하고 인간 본성에 숨은 공포를 잉크 삼아 글을 썼다. 앨런 포는 그를 향한 비난에 상처받지 않았다. 상처야말로, 비난이야말로, 그의 글을 이루는 뼈대였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포의 삶은 흐리고 탁했다. 그를 감싼 포대기는 잿빛에 가까웠다. 1809년 1월 에드거 앨런 포가 태어난 해,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다.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그다음 해에 사망했다. 갓난아이 배냇짓에 미소 짓는 부모가 없었고, 걸음마를 뗄 때도 섬마섬마 손을 잡아줄 이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담배 상인이자 평소 인정 많던 이웃으로 잘 알려진 존 앨런과 프랜시스 앨런 부부가 그를 맡았다. 에드거 포의 중간 이름에 ‘앨런’이란 이름이 덧대어진 배경이다. 물론 공식적인 양아들로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보호자는 있었지만 부모는 없던 모호함. 고아였지만 그렇다고 버려진 아이는 아니었던 이가 포였다. 사춘기가 되자 그는 보호자인 존 앨런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존은 타고나기를 사람을 통제하길 즐겼고, 포는 날 때부터 규율이라는 경계를 벗어나려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존은 포를 영국으로 유학 보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기 뜻을 따라주길 바랐다. 물론 포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 충돌에 방파제 역할을 한 건 존 앨런의 아내 프랜시스 앨런. 그녀는 어머니의 따스함으로 포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포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었다. 도박에 빠지고, 싸움질을 일삼긴 했지만 프랜시스는 “소년의 치기”라면서 너른 마음으로 포를 품었다. 포에게 프랜시스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고작 스무 살이 되던 해, 신은 다시 한번 그에게서 ‘어머니’를 앗아갔다. 프랜시스 앨런이 1829년 죽었다. 남편 존 앨런이 이듬해 재혼하자, 포는 분노했다. 프랜시스의 흔적과 잔향이 집안 곳곳에 서려 있는데, 다른 여자를 들이겠다니. 포는 더 이상 존 앨런을 보지 않기로 하고 앨런가(家)와 이별을 고했다. 마음속 채도는 더욱 내려갔다. 잿빛인 줄 알았던 인생은, 흙빛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 추리소설을 쓴 작가로 잘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는 13살 나이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와 혼인했다(좌). 에드거 엘런 포와 13살에 결혼한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 클램(우). 고작 2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 최초 추리소설을 쓴 작가로 잘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는 13살 나이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와 혼인했다(좌). 에드거 엘런 포와 13살에 결혼한 사촌 여동생 버지니아 클램(우). 고작 2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3살 사촌 동생 버지니아와 결혼

‘소아성애자’ 손가락질에도 왕성한 활동

포는 홀로 서야 했다. 그는 뉴욕으로 가서 시집 ‘Poems’를 출간했다. 신문에 이것저것 잡문을 기고하면서 입에 풀칠했는데, 반응은 뜨거웠다. 볼티모어 지역 신문사 공모전에 단편소설로 등단하면서 문예잡지 편집진에 합류했다. 술 먹고, 도박하고, 글 쓰고가 반복됐다.

그가 27살이 되던 해. 취해 있던 포의 정신이 맑아졌다. 순수의 결정체와 같은 여인을 만나서다. 주인공은 사촌 동생 버지니아 클램. 사촌과 결혼이 당연시되던 시절, 촌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버지니아 나이가 13살에 불과했다. 소아성애자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포는 자신의 이모이자, 버지니아의 엄마를 찾아갔다.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자신도 새사람이 되겠다고. 두 사람은 부부로서의 연을 맺었다. 손가락질에 지친 자신을 온전히 품어주던 유일한 사람이 버지니아였다.

포는 버지니아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 성실히 글쓰기를 이어갔다. 여러 잡지 편집자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써 내려갔다. 문학사에 길이 남는 단편 ‘검은 고양이’도 이때 썼다. 술에 취해 아내와 고양이를 잔혹하게 죽인 뒤 점점 미쳐가는 한 남자를 그린 작품.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에도, 포는 인간 깊은 내면에 놓인 광기를 그렸다. 소중한 이를 상실했던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가 불안·공포·살인의 이야기로 발현한 것이다.

폐결핵 걸려 그를 떠나간 ‘어린 신부’

‘죽음’을 사랑한 작가…미스터리한 죽음

공포소설의 거장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이름값이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절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에는 저작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포의 글을 읽었지만, 그에 걸맞은 값을 치르지 않았다. 대작가의 경제적 궁핍. 포는 다시 불가항력적인 공포와 마주한다. 아내 버지니아가 폐결핵에 걸린 것. 1842년 겨울밤, 버지니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 포는 피비린내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5년의 극진한 간호, 신은 다시 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앗아갔다. 버지니아의 나이 고작 24살이었다.

포는 다시 혼자가 됐다. 아내의 시신이 묻힌 땅에서 통곡했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집은 비어 있고, 그에게는 펜 하나뿐. 그는 절절한 애가(哀歌)를 썼다. 버지니아가 세상을 떠난 직후 쓴 시 ‘애너벨 리’다(일본 대문호 오에 겐자부로는 ‘애너벨 리’를 소재로 소설을 썼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에도 애너벨 리가 등장한다).

뉴욕의 독자들은 포의 진혼곡에 함께 울었지만, 포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취했고, 썼고, 잠들었고, 다시 취했다. 그의 꿈결에는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양어머니 프랜시스가, 아내 버지니아가 나타났다가 이내 피를 흘리며 죽어버렸다. 젊은 시절, 그의 인생의 전부였던 이들이, 사라져버리는 악몽의 연속.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유독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죽음을 맞는 이유다. 그의 문학은 현실에서 떠나보낸 이들의 부활을 염원하는 기도문이기도 했다.

1849년 10월 미국 버지니아. 한 술집에서 한 사내가 취해 있었다. 주인이 들춰보니 그는 죽어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 추리소설의 탄생을 알린 소설가의 미스터리한 죽음. 며칠 후 열린 그의 장례식.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검은 까마귀, 검은 고양이, 어머니 엘리자베스, 양어머니 프랜시스, 아내 버지니아… 사람들이 흉물스럽게 여기는 짐승, 그게 아니면 죽은 자들이었다. 포가 가장 사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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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7호 (2025.07.09~07.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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