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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톈안먼 성루의 기억 [김선걸 칼럼]

  • 김선걸
  • 기사입력:2025.07.04 13:15:27
  • 최종수정:2025.07.04 13: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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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2015년 9월 3일.

중국이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자유 진영 정상 중 유일했다. 미국과 일본은 반대했고, 국내 외교가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참석을 강행했다.

청와대는 “오로지 국익을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북핵 대응, 경제 협력에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개인적 신뢰도 감안했다. 2005년 장시성 당서기와 야당 대표로 만난 후 교류를 이어간 ‘라오펑요우(오랜 친구)’ 사이였다.

취지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순진했거나 중국을 너무 몰랐다.

필자도 출입기자로 중국에 동행했다. 행사는 박 대통령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톈안먼 앞 광장 가운데 시 주석 부부가 우뚝 섰다. 그 앞에 중국 주변국 30여개국 정상이 줄을 서서 차례차례 시 주석과 악수했다. ‘황제가 변방 제후국의 사신을 맞는 입조(入朝)를 오버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타전됐다.

톈안먼 성루에 올라 군사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일 전투기 핵무기 탑재 장비까지 총출동했다. 서방 분석에 따르면 총 1만2000명의 인민 해방군과 500여점의 신무기가 등장했다. 시 주석이 오픈카를 타고 “퉁즈먼 하오! 퉁즈먼 신쿠러!(동지들 안녕, 동지들 수고)”할 때마다 군인들이 우렁차게 응답했다. 중국 군사력을 과시하는 정치 연출에 박 대통령은 조연이었다.

그날 중국 지사장을 하는 친구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베이징서 수십 년 거주한 터줏대감이다.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호텔까지 오질 못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베이징의 4환(톈안먼을 중심으로 동심원으로 나눈 구역) 이내는 계엄 상태라 했다. 차량 진입은 금지됐고 거주민도 2부제였다. 한국 정상 일행은 중국에 통제되고 있었다.

외교란 가끔 손해를 보기도 해야 한다. 망신당했어도 국익을 얻었다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2016년 7월,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이 시작됐다. 무자비했다. 롯데마트는 철수했고, 관광·화장품·콘텐츠 수출이 마비됐다. 현대차 중국 판매는 반 토막 났다. 손실은 수조원대였다.

결국 ‘톈안먼 외교’는 명분도 실리도 잃은 실패였다.

문재인정부 외교는 더 심했다. 첫 중국 국빈 방문 때 한국 수행단을 중국인들이 집단 폭행하는 전대미문의 모욕을 당했지만 정상회담 때 언급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중국 측 홀대로 혼밥을 하고 베이징대를 방문해 ‘중국은 큰 봉우리’라고 치켜세웠다. 북한 문제를 도와달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매달리는 문재인정부에 더 냉랭했다. 시 주석은 5년간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방중 이후 정확하게 10년이 지났다. 전승절 80주년이다.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을 초청했다. 행사는 화려할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정세는 더 첨예해졌다. 푸틴과 김정은이 동맹을 맺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인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미중 갈등은 더 격화됐다.

전승절은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전체주의 진영의 단합대회다.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한 때다. 상대를 알아야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한 나라의 외교적 정체성은 몇 년 사이 변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전승절 행사는 한국 대통령이 완벽하게 통제된 쇼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걸 감수할 만한 큰 보상을 중국에서 받아낼 수 있나.

사진설명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7호 (2025.07.09~07.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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