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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정담] 정치인의 성경 인용

  • 김병호
  • 기사입력:2025.06.26 17:17:38
  • 최종수정:2025-06-26 21: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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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하원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프레드 켈러 공화당 의원은 민주당을 위해 기도하자며 누가복음의 한 구절을 읊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가 로마 총독의 핍박을 받아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전 하나님께 부르짖은 말이다. '저들'은 트럼프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을 가리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청년들의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꺼냈다. 그는 "러시아군은 전장에서 형제처럼 서로를 보호한다"며 "친구를 위해 영혼을 바치는 것보다 숭고한 사랑은 없다"고 했다. 이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요한복음 내용이다.

연설과 토론에서 성경을 인용하는 효과는 제법 크다. 주장에 도덕적 권위나 정당성, 논리적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청중이 기독교인들이라면 연사와의 일체감도 커진다. 반면 성경 발언이 잦으면 식상함과 함께 감성팔이한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맥락과 동떨어진 구절을 꺼냈다가 오해만 키우기도 한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4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성경책을 펼쳤다. 그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리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읽었다. 그러고는 "후보자께서 엄청난 역경을 이기면서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되새겼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청문 위원이 발언을 시작하면서 성경부터 읽으니 다소 의아하게 느끼는 국민도 많았을 것이다.

이날 불교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신정(神政)국가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청문회에서 의원의 성경 인용은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청문회 같은 공적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종교나 젠더 등의 민감한 이슈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좋은 의도였더라도 괜한 말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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