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어에도 영어에도 능통하지 않은 중국 학생들과 연일 팀 프로젝트를 같이하고 있자면, 자신들이 마치 중국 학생들의 학점을 챙겨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크게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요즘 전 세계에 날고 기는 중국 학생들이 넘쳐난다지만, 한국은 이런 학생들의 선택지는 아닌 듯하다.
한국 학생들이 중국 학생들과 힘겹게 팀 수업을 마친 후 비슷한 점수를 받는 상황이 언짢다는 말은 누군가에겐 철없는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교 시절 0.1점에도 마음 졸이며 내신 경쟁을 뚫은 세대의 시각에서 이는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유학생이니 이해하며 도와주라"는 조언은 '틀딱'들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스스로 반중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기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길 조심하면서도 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 익명의 공간에선 중국 학생들에 대한 혐오를 쏟아낸다.
교수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한국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중국 학생들이 대학의 재정을 메워주는 돈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사립대학의 한 교수는 "힘든 입시를 뚫고 갓 입학한 학생들이 중국 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표하며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면서 "오랜 기간 이어진 대학 등록금 동결 현상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씁쓸해했다. 20대 청년들의 반중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학 등록금 동결은 의도치 않게 하나의 트리거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2009년 가계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등록금 동결 정책을 시작했다. 대학들은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등록금 동결 대상이 되지 않는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대학들은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학생 유치에 집중했다.
실제로 2012년 약 8만명 수준이던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24년 20만명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중국 학생은 약 7만2000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34.5%를 차지했다. 최근 한국의 반중 정서를 주제로 다룬 일부 논문들은 한국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늘어난 시기에 20대의 반중 정서가 심해졌다는 점을 지적해 눈길을 끈다.
이런 현상은 등록금 동결 이후 15년여가 지난 현재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을 던진다.
과거 등록금 동결은 학생과 학부모에겐 환영받을 '착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정책이 훗날 미칠 부작용 등은 섬세히 따지지 않았다. 또 장기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생겨난 여러 부작용에 대해 애써 모른 척했다는 점도 문제다.
청년들의 반중 정서는 지금은 학교에 머물러 있겠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외국인 혐오라는 형태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미 젠더·세대 갈등에 놓여 있는 청년들이 활동하고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이런 분위기가 더욱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원했던 미국과도 흡사한 풍경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 정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선한 목적으로 보이는 정책이라도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정책을 체감할 수 있게 속도감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 장기적 영향까지 내다보는 지혜가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이윤재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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