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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철칼럼] 중동의 주사위 게임

한국전쟁 75주년에 마주한
이스라엘·미국 對 이란 전쟁
전쟁 효용성 맹신할까 우려
매번 이기는 도박은 불가능

  • 기사입력:2025.06.25 17:46:57
  • 최종수정:2025-06-26 11: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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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역사는 세월과 함께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게 6·25전쟁 75주년을 무심히 지나치던 와중에 이역만리 중동의 전쟁과 마주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이번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종으로는 중동 역사, 횡으로는 미국 외교 전략을 교차시켜야 한다. 중동 지역에는 수천 년간 아랍계, 튀르크계, 페르시아계, 유대계가 살았다. 동로마, 페르시아, 이슬람제국이 그 땅 위에서 명멸했다. 7세기 등장한 이슬람교는 중동 전역으로 퍼졌으며 이후 다수 수니파와 소수 시아파로 나뉘었다. 이란은 페르시아제국 후예이자 시아파의 맹주다. 아랍계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맹주로 이란과는 역내 라이벌 관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질서를 흔든 사건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그리고 1979년 이란혁명이 꼽힌다. 인구 950만명의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수없는 전쟁을 불사했고 중동 내 유일한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이란은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신정 체제를 수립했다. 절대왕정 체제가 주류인 중동에서 이란은 인종, 지배 체제 모두 이질적인 존재가 됐다.

이후 이란은 내부적으로 핵무장을 시도하고, 밖으로 하마스(팔레스타인) 헤즈볼라(레바논) 후티(예멘) 등 무장세력을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견제해왔다.

과거 미국의 중동 전략은 사우디와 이란에 친미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구심력은 사우디에서 유지됐으나 이란은 혁명 이후 반미로 돌아섰다. 이제 미국은 다시 이란의 권력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이번 전쟁을 보며 권력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다시 깨닫게 된다. 국내 정치에서 위기에 몰린 권력자에게 전쟁은 때로 주사위 게임이 된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숫자 6이 나오는 데 올인했다. 세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를 지내고 있는 그는 하마스와 분쟁 지속, 뇌물 의혹, 극우 정당의 연정 이탈까지 얽히며 실각 초읽기에 몰렸다. 이번 전쟁은 그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발판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 이상이 나올 확률을 믿고 판에 뛰어들었다. 집권 2기를 시작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등 2개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외교적 궁지에 몰렸다. 국내적으로도 서부 이민자 시위로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상태였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이란핵합의(JCPOA)를 파기하고 경제 제재를 강화했으나 비핵화에 실패했다. 이번 전쟁으로 전리품을 얻은 경험은 그가 군사력의 효용성을 과신하는 계기가 될 우려가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당장은 게임에서 물러났지만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그는 1989년부터 36년째 집권 중인 권력의 정점이지만 이제 차기 구도를 정해야 한다. 개혁파에게 힘을 싣는다면 이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지만, 체제 수호에 올인한다면 중동의 긴장은 이어질 것이다.

아직 우리는 중동에서 벌어지는 주사위 게임의 결과를 알 수 없다. 다만 지난한 중동 역사만큼이나 주사위 던지기는 반복될 것이고, 그 누구도 모든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전쟁이 질서 있게 수습되지 못한다면 새로운 혼돈의 시작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그 불안한 세계에서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전쟁이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단된 한반도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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