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가 쓴맛을 본 미국이 이제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에 부과한 상호관세는 46%. 비록 90일간 유예했지만 베트남에 있는 수출기업들은 살 떨리는 심정일 것이다. 그나마 90일 유예 기간 내에 미국으로 물건을 최대한 밀어 넣기 위해 공장을 풀가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소국 레소토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으로 다이아몬드와 청바지를 수출해 대미 흑자를 내는 레소토는 무려 50%의 상호관세를 얻어맞았다. 이 나라가 미국 적자의 원흉일 리는 없다.
코미디 같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중국 견제'에서 비롯됐는데 미국이 중국을 무릎 꿇릴 수 있을까. 오히려 트럼프의 과욕이 중국에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동남아 3국 순방에 나섰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울상이 된 아시아 국가들을 우군으로 포섭하려는 행보다.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미국이 관세장벽을 높이고 중국을 고립시킬수록 중국은 산업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 자명하다. 지난 19일 중국이 개최한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대회'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톈궁 울트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공지능(AI), 모터, 센서, 배터리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21㎞ 코스를 완주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터미네이터의 세계가 중국 주도로 열릴지 모른다.
미 정부가 엔비디아의 H20 대중 수출마저 제어할 태세지만 중국은 이 또한 극복할 것이다. 잠시 기세를 꺾을 수는 있어도 맹추격을 따돌리긴 어렵다. 이미 화웨이가 차세대 AI 칩을 공개하면서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관세전쟁이 중국의 기술 혁신을 촉발하는 반면 미국이 얻는 실익은 보잘것없을 게 뻔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다. 이곳에 있는 화웨이의 최첨단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둘러봤다고 한다. 3만5000여 명 연구 인력이 묵는 초대형 숙박시설과 100여 개 건물, 단지 안을 순환하는 모노레일, 100개의 카페로 이뤄진 화웨이 캠퍼스에서 인류 미래를 확인했다고 실토했다. 과거에는 미래를 확인하러 미국을 갔지만, 이제는 중국을 봐야 한다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이번 미·중 관세전쟁의 승자는 트럼프일까, 시진핑일까. 사생결단의 치킨게임이 양국 모두에 상처를 주겠지만 둘의 우열을 가린다면 답은 나와 있다. 트럼프가 자해적인 관세전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중국에 커다란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미래는 장벽을 쌓는 자의 것이 아니라, 그 벽을 뛰어넘는 도전자의 것이다.
관세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불리한 쪽은 트럼프다. 미국 소비자들이 제품가격 상승을 견디지 못해 폭발할 것이다. 연일 휘청이는 시장 상황에서 투자자들도 치를 떨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월가 인사들은 "우리가 그를 잘못 판단했다"며 후회의 목소리를 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미국 우파를 지배하는 한, 미국은 예측할 수 없고 그것은 중국에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울프의 냉철한 진단이다. 벌집을 쑤셔 놓은 트럼프가 대혼란을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하다.
[황인혁 지식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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