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가장 내면적인 것이 외면으로 드러나는가?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 에베소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습관이 인간에게 운명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습관이란 한 사람이 자주 생각하는 것이 드러나는 언행이며, 그 언행은 그 사람의 개성이 되어 표정, 걸음걸이, 동작이 된다. 카라바조는 13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성인인 성 프란체스코의 사랑의 기적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렸다.

카라바조가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 그림을 그린 시기는 1595년이다. 그가 고향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해였다. 그는 어머니 친척으로 도움으로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라는 유력한 추기경의 집에 입주한 화가가 되었다.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워, 자신을 주위 사람들에게 “델 몬테의 화가”라고 소개하곤 했다.
그가 팔라초 마다마에서 그린 첫 그림들 중 하나가 바로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다. 누가 이 그림을 카라바조에게 주문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델 몬테 주교이거나 혹은 당시 로마 한 은행가이며 미술품 수집가인 오타비오 코스타 백작일 가능성이 크다. 코스타 백작은 1605년에 남긴 유언장에 이렇게, 이 그림의 단서가 되는 글을 남겼다.
“카라바조의 ‘성 프란체스코’ 그림은 네 개의 종려나무 이파리로 장식되어 있다.”
코스타 백작은 이 그림을 델 몬테 주교에게 희사하였고, 그 후 이 그림은 ‘악사들’ 같은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과 함께 팔라초 마다마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지난 400년 동안 알 수 없는 행방을 거쳐, 지금은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 있는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독일과 프랑스를 휩쓸고 있었던 개신교 종교개혁에 맞서는 가톨릭 자체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있었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가톨릭 신자 종교개혁 운동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모델은 성 프란체스코였다.
성 프란체스코는 13세기 아시시에 살던 수사였다. 그의 설교는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 감정에 호소했다. 그에게 자연은 신의 영성이 깃든 복된 창조물이다. 다만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이 오염되고 훼손되었을 뿐이다.
한 기록에 따르면, 프란체스코가 몇몇 동료들과 함께 여행하던 중 길가의 나무 양쪽에 새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을 우연히 발견하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내가 새들에게 설교하러 가는 동안 저를 기다려주십시오.”
놀랍게도 새들은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를 에워쌌고,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작은 동생들인 새들아! 너희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많은 은총을 입었구나. 너희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는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느님이 너희들에게 사방을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리스도의 고통이 그의 몸에 새겨진 소위 ‘성흔(聖痕)’ 사건이다. 성흔은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 못이 박힌 좌우 손발과 이 과정을 지휘한 로마 백부장 롱기누스의 창에 찔린 옆구리 등 모두 다섯 가지 상처를 의미한다. 성흔 현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한 13세기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종교적인 법열 상태에 빠진 종교인의 신체에 등장한 현상이다.
당시 프란체스코의 성흔을 그리는 방식의 기준을 정한 화가는 조토였다. 근엄한 프란체스코가 천사 모습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못 박힌 손에서 뿜어져나오는 광채를 양 손바닥으로 받는 모습이다. 성 프란체스코가 알베르노 산에서 기도하는 동안 하늘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유영하는 예수에게서 성흔을 받고 있다.


‘성흔’을 받는 순간 기절해서 누운 프란체스코
카라바조는 이 성흔 장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 그는 13세기 후반 신학자인 성 보나벤투라의 책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읽고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 성흔의 기적을 기록했다.
1226년 10월 3일, 프란체스코가 선종한 후, 형제회는 그의 서거를 이렇게 알렸다.
“저는 여러분께 큰 기쁨과 새로운 기적을 알립니다. 이는 태초부터 하느님의 아들, 주 그리스도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표징입니다. 프란체스코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의 흔적인 다섯 개의 상처를 몸에 지니고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흔적들은 프란체스코가 임종을 앞두고 몸에 남긴 흔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약 2년 전, 외딴 알베르나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던 중 이 흔적을 받았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다른 두 명의 수사와 함께 그곳에 갔는데, 그중 한 명이 레오 형제였습니다. 깊은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여섯 날개를 지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천사가 다가오자, 프란체스코는 그 날개들 사이에 십자가 처형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십자가에서 처형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취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숨겨진 사랑의 실천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프란체스코가 이 사실을 이해하게 되자, 자신의 심장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상처가 자신의 손과 발에 그대로 나타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카라바조는 성 보나벤투라의 글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극적인 방식으로 그렸다. 자신의 심장에 성흔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카라바조의 프란체스코는 이 순간에 뒤로 기절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피가 샘솟아나고 있는 상처 위로 가져간다. 그의 손발에는 성흔이 없다. 오직 심장에만 그 상처가 남아 있다. 천사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기절한 프란체스코를 껴안고 있는 자비로운 모습이다. 카라바조는 성흔을 받는 순간에 기절해서 누워 있는 성인을 그린 첫 번째 화가다.
프란체스코와 천사의 그림은 그리스도교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 팔에 안긴 그리스도의 모습과 유사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이 그림에는 프란체스코의 성흔 그 이상에 대한 무언가가 있다.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체스코’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인 사랑이 성인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보았던 수많은 16세기 모든 로마인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건이라고 증언한다.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사랑은 신이 창조한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드러나며, 그것은 우리의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양심이자 깨달음이다.
[배철현 더코라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